한줄 詩

누군가가 떠나갔다 - 김종해

마루안 2020. 11. 2. 21:51

 

 

누군가가 떠나갔다 - 김종해

 

 

바람이 분다

천지에 낙엽이 흩날린다

한 시절 삶을 끝내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나뭇잎은 저마다

몸속에 제 이름을 새긴 문양이 보이고

투신하기 전에 껴안고 살았던

아찔한 벼랑 하나가 보인다

이 세상의 삶을 끝낸 누군가가

먼길 떠나기 전 그곳의 벼랑

평생 낮은 곳에서 뜻을 벼룬 사람은

하늘에 올라 별이 되고

나뭇잎은 지상으로 내려와

슬픈 이름을 받든다

하늘과 지상의 경계 사이에서

바람은 불고

벼랑 하나씩을 껴안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나뭇잎은 떨어져서

누군가가 떠나간

가을을 적멸(寂滅)로 물들게 한다

 

 

*시집/ 늦저녁의 버스킹/ 문학세계사

 

 

 

 

 

 

만추, 낙엽들을 지휘하다 - 김종해

 

 

바람이 분다

민감하게 연출하는 지휘자의 손

붉게 혹은 누렇게

허공으로 느닷없이 뛰쳐나와

흩날리는 나뭇잎이

천지에 가득하다

누구의 부음(訃音)일까

만추(晩秋)에 보이는

하늘로 길 떠난 사람들의 뒷모습

걸어온 길보다 떠나야 할 길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늦은 가을길

인생은 짧다고

바람은 불어서

붉게 혹은 누렇게

길바닥까지 분장시킨다

나뭇잎이 또 한 장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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