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망원 - 전형철

마루안 2020. 11. 1. 19:15

 

 

망원 - 전형철


1
그는 생각보다 키가 크고
엄지와 검지로 만든 동전은 잠시 거인의 눈을 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2
거인의 눈을 목에 걸고 목성의 두 행성을 염려한다
오늘의 날씨와 부고란을 뒤적이며
우산과 검은 비옷의 비율에 대해 고민한다

맨눈에 두 행성은 뿌연 버스 창 같을 테지만

 

동전은 무겁다 땅에서 멀어질수록 무게는 줄어들고 사람은 공중에 던져지면 사지를 벌리게 마련이다 비행과 낙하 사이 질량과 중력에 시험 든다
눈을 감고 간절히

두 행성과 멀어져 다른 행성에 내리고 안도한다
신은 거인의 눈 사이에 있다

3
지난 세기까지 믿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는 바퀴들이 다급하게 속력을 줄이다 후진해 돌아왔다
잠시 머뭇거린 순간,
거인은 몸집에 비해 힘이 세
보이는 것은 믿는 것이 되었다

언덕에서 그는 오랫동안 혼자였다
마른 수건은 도무지 축축해지지 않았고
밤새 굴러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문과 불신이 세차게 귀를 울리기도 했지만
하늘로 길을 잡은 물관을 들여다보며

계절은 조금 늦기도 했다

4
거인의 눈은 자정을 지나 길어진다

그는 빛으로 보는데 빛이 없는 곳에 주목한다

그리고 작은 행성의 경도쯤은 폐업한 휴게소처럼 지나친다
트랙을 한 바퀴 따라잡듯 뒷모습이 사라지기 전 잔상을 뚫고

그는 목성의 위성의 위성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시집/ 이름 이후의 사람/ 파란출판


 

 



추(錘) - 전형철


어둠은 열기다
깊은 곳은 뜨겁다

간유리에 비친 가로등을 품고
지금 웅크리고 있는 자
이 별에 그림자로 사는 사람

어둠의 족적을 불러내며
발톱과 손톱이 자라는 걸 번갈아 지켜보는
파산의 시간들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지 못하는 시곗바늘 위

쇳물로 된 지구의 내핵을 매만지는
마음의
이 뜨거운 씨앗을
어디다 내던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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