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봄날

마루안 2020. 10. 22. 22:31

 

 

 

이 책은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다. 출판사로부터 도움을 받았겠지만 본인이 직접 썼다. 몸 파는 여자. 흔히 창녀라고 부른다. 그래서 본명이 아닌 봄날이라는 가명을 썼다. 20년 동안 몸을 팔았다. 작가의 글발에 놀아나는 어떤 소설보다 흥미롭게 읽었다.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저자가 불분명한 책이 부지기수다. 독립 출판이 특히 그렇다. 언론 기자가 실명과 자존심으로 책임 지는 보도를 해야하듯 책도 마찬가지다. 본명인지 가명인지도 심지어 정체성마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 책은 성매매 여성이어서 가명임을 이해하고 읽었다.

 

성매매 여성들이 자주 듣는 말이 있다고 한다. 몸을 파느니 차라리 마트에서 일을 하던지 식당에서 서빙을 해도 먹고 살 수는 있지 않느냐, 뭐 이런 얘기다. 그 말에는 편하게 돈 벌려고 한다거나 재미 보면서 꿩 먹고 알 먹고 아니냐는 비하가 들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노동보다 성매매 여성이 중노동이고 거기에 동반한 삶의 고달픔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들어간다. 거기서 강간을 당한다. 그 상처를 딛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임신을 하지만 절교를 당한다.

 

어쩌다 미성년자의 나이에 술집에 취업을 한다. 룸살롱이다. 몸을 사는 남자들에게 어린 여자는 단연 인기다. 업주도 영업이 잘 되니 당연 좋아한다. 맨 몸으로 취업을 해도 걱정이 없다. 선불금을 펑펑 당겨 쓰게 해준다. 일 시작하자마자 방값, 옷값, 화장품값, 미용실값 등이 쌓인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일을 해도 빚더미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리고 아파서 며칠 쉬면 결근비, 조금 늦으면 지각비 등 각종 벌금을 매겨 빚은 더욱 늘어난다. 심지어 질 나쁜 진상 손님이 트집을 잡아 술값을 안 내도 술값은 고스란히 아가씨가 부담을 한다.

 

아가씨가 다른 곳으로 옮길까봐 업주가 짜고 이런 행태를 부려 빚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 우선 빼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술집에서도 나이를 먹는다. 남자들은 금방 같은 아가씨를 싫증낸다. 룸살롱의 아가씨들은 이십 대 후반이면 퇴물 취급을 받는다.

 

이 직종도 직업 소개소처럼 아가씨를 중개하는 소개쟁이가 있다. 아가씨의 빚을 떠안고 다른 곳을 소개하는 것이다. 룸살롱에서 유리방으로 옮긴다. 빚을 갚기 위해 죽어라 일해도 빚은 그대로다. 그들은 손님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푼다.

 

몸은 축나고 그들은 빨리 늙는다. 손님이 권하는 술도 마셔야 하지만 일 끝나고 신세 한탄을 하며 술과 담배로 자신을 위로한다. 그들이 기댈 곳은 술 담배뿐이다. 그러니 빨리 늙지. 나이 먹으면 등급에서 밀린다. 업주는 당연 돈 되는 아가씨를 선호한다.

 

한곳에 오래 일을 하거나 업주에게 찍히면 진상처리반에 투입된다. 매상은 올려주지 않으면서 각종 추태를 부리며 아가씨만 괴롭히는 진상 손님 방에 들여보내는 것이다. 아가씨도 돈은 못 벌고 애만 먹는다. 생존을 위해 다시 일할 곳을 옮긴다.

 

보도방이다. 일종의 출장 성매매 서비스다. 업소에서 직접 아가씨를 고용하기 힘들 경우나 부족할 때 보도방을 이용한다. 당연 직접 고용한 아가씨와 차별을 받는다. 업소에서는 돈 되는 고정 아가씨를 아끼기 위해 진상처리반에 보도방 아가씨를 투입한다.

 

경험 많은 남자는 기막히게 보도방 아가씨임을 알고 무시를 한단다. 술집에는 지정 손님이 있다. 올 때마다 특정 아가씨를 지목하는 것이다. 어리고 잘 나가는 아가씨를 많이 지목한다. 저자도 지정 손님이 있었다. 처음에는 돈도 되고 편해서 좋았다. 

 

친해지면서 손님이 술값 외상을 한다. 몇 번은 잘 갚다가 외상이 점점 쌓여간다. 업주는 술값을 못 받아도 아가씨에게 받을 수 있으니 허락을 한다. 남자는 늘어나는 술값을 감당하지 못해 발길을 끊는다. 고스란히 아가씨 선불금에 얹혀져 빚으로 쌓인다.

 

성매매 여성들이 한 번 발을 디디면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기다 모든 물품을 지정한 곳에서 사야 한다. 미용실도 옷가게도 화장품도 업주가 지정해준 곳이다. 이런 아가씨를 상대하는 기생 업소는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다.

 

러브젤이나 속옷 등도 방문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산다. 업소에서 그들은 이모, 삼촌으로 불린다. 심지어 커피, 음료수 등도 편의점이나 수퍼를 가지 못해 삼촌에게 비싸게 사서 마신다. 이모나 삼촌은 아가씨를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저자는 시골에 있는 티켓 다방으로 간다. 성매매 여성들이 그토록 기피하는 곳으로 티켓 다방은 술집에서 안 팔릴 때 최후에 가는 곳이란다. 다방에서는 이름은 필요 없고 성만 있으면 된다. 저자는 김양으로 정했다. 당연 같은 다방에 중복 되는 성은 없다.

 

시골 다방은 업소에서 마시는 것보다 배달 커피가 많다. 저자는 빚더미에 벗어 나고자 죽어라 커피 배달을 하고 몸을 원하는 남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논밭에서는 순박한 농부였다가 다방 아가씨를 만나면 돌변한다. 다방 아가씨는 막 다뤄도 된다는 것일까.

 

저자는 쌓인 빚을 갚지 못해 고소를 당한다. 감옥에 갈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는다. <여성인권지원센터>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곳이다. 저자는 티켓 다방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아이 딸린 이혼남이다. 그 남자가 결혼 조건으로 그동안 쌓인 빚을 몽땅 갚아주면서 성매매 업소에서 벗어난다.

 

잠깐의 행복도 잠시 남자의 폭력으로 파경을 맞는다. 저자는 지금 폭력과 성매매에서 벗어났다. 근 20 년 동안 룸살롱 -유리방 -보도방 -티켓다방 등을 전전하며 몸과 마음이 황폐화되었다. 성매매를 벗어나도 사회 생활이 순탄치 않다. 술과 담배. 거친 입. 그들은 욕을 입에 달고 산다. 

 

책 내용에는 훨씬 수위 높은 표현이 등장한다. 저자가 일한 지역도 전국 대도시와 시골 면소재지까지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일을 했다. 일한 업소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책을 읽으면 성매매 여성에게 손가락질을 못한다.

 

천태만상 인간세상 사는 법도 가지가지라는 유행가가 있다. 귀천이 없다고 했으나 저자는 일하면서 귀천이 있음을 체험했다. 저자가 성매매를 하며 깨우친 것도 있다. 술집에서 만난 남자들 중에 매너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영화 같은 아니 영화보다 더 생생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