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픈 축제 - 김종필

마루안 2020. 10. 30. 21:55

 

 

슬픈 축제 - 김종필

 

 

사랑은 언제나 온유함을

손가락으로 그려내는 그들

 

사이를 막고 있는 무수한 벽을

우렁찬 박수로 깨뜨려야 하지만

아무도 소리 내지 않는다

 

눈으로 듣는다는 것이

마냥 슬프다

손으로 말하는 그들은

결코 울지 않는다

점점 눈이 커지는 춤과 노래

 

십자가가 사랑이 아니거늘

세상을 등지지 못하는 꽃들이여

내 멀쩡한 다리가 부러지도록

목발을 던져라

일그러진 얼굴에 침을 뱉어라

체념을 중심으로 도는 무대 위에

스스로 꽃이 되어라

 

남들이 기쁘게 웃으면

얼굴이 왜 차갑게 일그러지는지

남들이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울 때

가슴이 왜 얼어붙는지

 

말할 수 없음에

볼 수 없음에

걸을 수 없음에

 

결코 온유한 사랑을 구걸치 않는 맹세

저마다 타고난 멍에가 눈부신 꽃이 되리라

 

 

*시집/ 무서운 여자/ 학이사

 

 

 

 

 

 

마음이 아픈 이유 - 김종필

 

 

모래더미에서도 꽃 피우는 다육이 좋아하더니, 버려진 화초를 잘 주워 온다 가난을 들인다고 말려도 들은 척 않는데, 집에 화초들이 대부분 그렇게 왔다 어느 아침에 갓 눈을 뜬, 꽃을 코밑에 가져와 향기를 맡으라 하더니, 길가 버려진 화분 흙더미에서 데려왔는데, 꽃을 피웠다고 꽃처럼 웃었다

 

물 한 방울도 그냥 버리지 말아야 한다 물 주고 햇살을 뿌렸더니, 살아 꽃을 피웠다 우리는 금방 지겨워하고, 쉽게 버리려 한다 지겹다고, 상처가 있다고, 아프다고 막 내버리면 그동안 함께한 시간만큼, 꽃피웠던 사랑도 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아픈 거라고 말하는 그대가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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