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당신은 내 국경이다 - 김대호

마루안 2020. 10. 29. 19:29

 

 

당신은 내 국경이다 - 김대호


내 인생에 필요한 무엇 하나를 얻는 데 너무 많은 세월을 투자했다
비효율적 투자였다
아플 때 바로 쓰러지는 일은 효율적이다
멀쩡하게 살면서 중요한 구조는 다 쓰러져 있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

내 몸의 체적에 인접한 곳 국경이 있었다
당신이 내겐 국경이다
모국어를 버리고 국경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말을 더듬었다

국경을 앞에 두고 술을 마셨다
어떤 연애도 내 안에 번지는 산불을 진압하지 못했다
그랬는데
낯선 나라에서 온 그대가 국경이 되어
나와 누군가를 구별하기 힘든 둘레에다가
굵고 깊은 금을 그었다

나는 그 국경 근처
비효율적인 몸짓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당신이 내 현재가 될 때까지
어눌하지만 지속적인 신호를 보냈다

당신이 내 암호가 되고
내가 국경을 넘는 날
강의 수위가 낮아졌다
날씨는 입술이 트지 않을 만큼 포근했고
쓰러진 것들이 효율적으로 일어났다
너무 많은 세월의 투자는 투자가 아니라
원금이 차감되지 않는
보험이었다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걷는사람

 

 

 

 



내일은 절벽에서 만나요 - 김대호


내 몸 외곽에 절벽이 있다면 어깨 부근이리라
절벽의 절경을 닮지는 않았어도
우연히 내 어깨를 기어가는 벌레의 심리는 어떨까
탐사가 불가능한 몸 안쪽 어딘가에도 절벽이 있어 간혹 천 길을 떨어지다가 일어나
식은땀을 닦을 때도 있으니
이 작은 육체에 왜 이런 절벽의 유형들이 자리 잡았는지 알 수 없는 일
바닥에 떨어져 용케 다시 기어가는 벌레의 행적은
내 어깨에서 낙하한 잠깐의 해프닝을 금방 잊는다
벌레같이 기어다녔던 바닥들
내 식은땀의 후일담은 그러나 아직도 끈적하게 남아 있다
헤어지자고 말하던 당신의 그 작은 입술이 내겐 절벽이었다
실직 후 일자리를 찾아 어느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몇 개 안 되는 계단이 모두 절벽이었고 폭포수 같은 식은땀이 흐르던 기억
내겐 각도가 조금씩 다른 절벽 몇 개가 있다
그날의 날씨와 심리에 따라 절벽에서 언덕으로
평지가 되었다가 다시 몸을 세우는 절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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