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달이 떠서 기뻤다 - 박구경

마루안 2020. 10. 28. 22:06

 

 

달이 떠서 기뻤다 - 박구경



감 농사 잘 지은 마을 사람들 덕이다
커다란 다라이에 작은 달들이 가득 담겨 있다
구름이 걸린 것처럼
작은 달 하나에 감잎을 달아 놓은 것이 화가의 마음이다
달 하나를 깨물어 달의 씨 속에서
오래 전에 놀던 숟가락을 보니
달 따다 다친 이도
달 따다 벌에 쏘인 이도
그만 어려져서 열 살 적 얘기를 하고
일곱 살 시절이 가로막아 가며
타작마당에 그 무슨 기운이 굴러다닌다
이게 다
감 농사 잘 지은 마음 덕이다
달상자를 트럭에 가져다 싣는 택배 총각
주소와 전화번호를 연달아 묻는다
달에게
달을 닮은 사람들에게


*시집/ 외딴 저 집은 둥글다/ 실천문학사


 

 

 

 

노무현을 추억하다 - 박구경


1
저 환한 들판에 이따금 그가 들르면

삐딱하게 기운 자전거 위에서
밀짚모자 건들멋으로 쓰고
발 하나를 땅에 딱 디딘 채
삐딱하게 기운 자전거 위에서
내려서지 않고 그저 배식 웃기만 한다

수줍은 이것이 압권이다

허상이 아닌 실체로서
자신을 던져 역사를 끌고 간 사람이면서도
그렇지 않은가?
자연으로 거기 있는 그이면서도
인간으로 거기 있는 그이면서도
거기 그냥 미안한 것 같기에

이웃 아저씨의 두툼한 손으로
손을 흔들어 낮고 구수한 목소리로
잘들 계셨지요?
인사로도 내려서지는 않고 비스듬히 기울어
삐딱한 그의 자전거는 본때 없다

수줍은 그것이 압권이다


2
죄를 짓고도 알지 못하는
꼭두각시 피노키오 각하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과 변명,
각하를 단죄하던 민심은

추운 겨울 광화문 광장을 꽉 매운 촛불들의 함성으로
우리들이 흘린 그 눈물이
수많은 나비가 되어 춤을 춘다
당신은 그렇게 거대한 나비구름에 휩싸여
나비가 되었다
당신의 좋은 친구 문재인, 대통령이 되어 봉화를 찾은 날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당신의 나라

나라다운 나라로!

그렇게 당신은 돌아왔다

'아, 기분 좋다!'며 돌아왔다

짓밟히고 뜯긴 육신과 영혼을 딛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돌아왔다

고니와 오리, 기러기들이 놀고 있는
화포천을 달리던 자전거 바퀴 자국을 따라

단 하나의 사람으로




# 박구경 시인은 1956년 경남 산청 출생으로 1998년 제1회 전국 공무원문예대전 시가 당선되어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진료소가 있는 풍경>,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국수를 닮은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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