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태양계 가족 - 조우연

마루안 2020. 10. 29. 19:10

 

 

태양계 가족 - 조우연

 

 

중심에 엄마가 있었고 영원한 빛에너지이며 생명의 근원이었다. 절대 꺼지지 않을 우리 모두의 태양.

 

태양 가장 가까운 궤도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오빠는 자신의 불안정한 운행에도 딸린 위성 셋을 달고 태양을 돌고 있다. 1억 년은 더 늙어 보인다.

 

이런저런 사고를 치던 나를 두고 탄생 시기의 부적절성과 타고난 대기 성분의 부조화 진단을 내린 적이 있으나 지금도 나는 삐따닥한 기울기로 나만의 궤도를 돌고 있다. 술 마신 날엔 거꾸로 돌기도 한다.

 

서로의 중력에 못 이겨 맞물려 돌고 있는 남편과 나, 광활한 우주에서 부부의 연이 결코 가볍지는 않겠으나 떠돌이별의 근원적 궤도이탈 갈망을 이해하는 게 좋지 않겠나.

 

광원도, 마땅한 행성도 되지 못하고 숫자로 명명된 아버지는 경로당과 경마장을 오가며 소혹성 모임을 갖고 있다. 태양계의 한 구석을 떠돌면서 한때 버젓한 행성이었다는 그들은 자체 발광하는 척, 척을 한다.

 

오, 우리 모두의 태양,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릴 비춰주는 엄마, 절대 꺼지지 말아야 할 태양에 흑점이 발견되었을 때 비로소 우주에 영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심치 않았던 것들의 상실이 떠돌이별들의 중력을 늘린다.

 

우리는 각자 떠돌다가도 정체모를 혜성이 다가오면 나름의 명분으로 뜬금없이 뭉쳤다. 반대편의 음영을 들키지 않으면서 서로 눈부시게 빛났다. 누구든 돌았으므로 아무도 돌지 않았다.

 

어느 SF영화의 엔딩에 나왔듯이 우주에는 이런 태양계가 수도 없이 많으며 은하계 역시 거인의 손에서 굴러다니는 구슬 속 작은 먼지일지 모른다 하니

 

적막하고 고독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23.5도 비딱한 자세로 생각했다.


*시집/ 폭우반점/ 문학의전당

 

 

 

 

 

폭우반점(暴雨飯店) - 조우연


주문한 비 한 대접이 문 밖에 도착
식기 전에 먹어야 제 맛
수직의 수타 면발
자작 고인 국물

허기진 가슴을 채우기에 이만한 요긴 다시없을 듯

빗발

끊임없이 쏟아져 뜨거움으로 고이는 이 한 끼
단언컨대,
죽지 말라고 비가 퍼붓는다

자, 대들어라

피골이 상접한 갈비뼈 두 가락을 빼들고!


 


*시인의 말

 

몸을 못 삼아 붙잡고 살아온 그림자를
이제 놓아주려 합니다.

새들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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