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샘밭 막국수 - 전윤호

마루안 2020. 10. 15. 19:12

 

 

샘밭 막국수 - 전윤호


종일 뛰어다녀도 건진 건 없고
등 찌르는 손가락질이 무서운 저녁
허물어진 안개 자욱한 샘밭에서
웅덩이 같은 허기 발을 잡는다

서울사람 물 준다고
오억 톤 우울을 가둔 소양댐은
세상 쓸쓸한 유령들이
버스 타고 오는 종점

도대체 왜 그러고 사냐고
그대는 떠나고
언제든 불러만 달라 장담하던
휴대폰마저 꺼진 시간

어두운 마당 지나
노란 불빛 흔들리는 문 열면
어서오세요 인사 건네는 저 할머니는
이 동네 지박령

노을이 풀어진 막국수에 소주 한 병
대충 살지 못한 사람들이 지내는
오늘 하루 제사
국수는 지친 영혼이 들이키는 음복

이별 터진 고랑에 메밀 심고
슬픔 갈아 반죽 쳐대면
세상은 여기서 멀지만
지금은 겨자와 식초를 치는 시간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시집/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북인


 

 



겨울 샘밭 - 전윤호


속 아플 때 빨아먹는 위장약처럼
안개가 들어온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두리번거리다 찾아낸다
헐어버린 담 붉은 낙서 균열을 먹고 뻗어가는 덩굴들
속수무책으로 신음하던 겨울은 그제야 눈을 뜨고 바라본다
드문드문 불이 남은 낡은 아파트
수술을 권하는 의사처럼
땅을 사러 다니는 사람들과
월세를 올리려 잔을 권하는 주인들
그 옆에 강이 흐른다 모두들 잊고 살지만
낮은 샘밭에서 높은 서울로
공평하지 못한 강이 흐른다
수변지역은 국토부 관할입니다
머릿수 많은 동네가 우선이지요
덕분에 샘밭은 말라간다
몇 개의 러브호텔과 막국수집과 닭갈비집들이
주말만 바라본다
생이 많은 밭은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용종이 발견됐습니다 다시 검사하세요
닥치라는 듯 안개가 더 밀려온다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