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고등어 - 박미경

마루안 2020. 9. 27. 19:25

 

 

고등어 - 박미경


시장으로 걸어갔다
깊은 바다, 좌판 보인다
부부는 마치 깊은 바닷속을 쉼 없이 헤엄치듯
물기를 머금은 고등어와 갈치를 건져 올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웃을 뿐
큰소리로 지나가는 사람을 부르지도 않았다
돈을 담은 고등어 피 말라붙은 압력밥솥
헐거워진 뚜껑으로 빠져나가려는 소금기 돌려 잠그며
너절한 지난날 뜸 들이는 중이다
고등어를 두 동강 내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눈을 가려 버렸다
나는 지금 고등어 눈을 뜨고 있지 않을까
움직일 수 없다
사람들이 출렁이며 밀려올 때마다
균형을 잡아주던 지느러미와
낙망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던 꼬리가
내장과 함께 제거되어 수북하다
시장으로 허기를 구걸하러 온 것 같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이 비루한 시간
어쩜 우리는 서로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히 파도에 떠밀려 나왔다


*시집/ 토란꽃이 쏟아졌다/ 詩와에세이

 

 

 

 

 

 

무 - 박미경


가부장주의이자 그들의 아버지이며 형님이
얼금얼금한 삶 염치없다며 툭, 내리쳤다

조카와 삼촌은 그때부터 살았고 살아가는 것
전 무(無)였다

삼촌은 숨도 쉬지 않고 죽어라 일만 하는 농사꾼이었고
조카는 가난한 집 장손이라 불평은 생각조차 못했다
젊었을 적 맞담배로 서로 위로했지만, 못 본 지 여러 해

말 없는 것은 집안 내력이라
온종일 입 다물고 있으니 치매인 줄 몰랐던 삼촌은
요양원에 바삐 들어가 버렸다
그날에 포박 당한 조카, 가려고 했던 길 돌려
고로 댐 밑바닥 같은 침묵으로 안방에 가라앉았다

아이고, 지난밤 꿈에 보이더니
부축받으면서 걷는 조카를 맞으며 삼촌은 울분을 삼켰다
두 살 차이, 그들 또한 얼금얼금한 삶이었다
지난날 말할 수 없음을 지키며 하는 이야기
죽음에 도달한 느낌이다
꼭 잡은 두 손 서로가 가여워 몹시 서럽다

다시 볼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며칠이 남아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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