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흔들리는 일 - 이서화

마루안 2020. 9. 28. 22:12

 

 

흔들리는 일 - 이서화


어금니 근처의 이빨 하나가
점점 더 심하게 흔들린다
어느 절의 당간지주 못지않은
역할의 기둥이었다
섭식과 씹는 일을
받치고 서있던 막중이었지만
푸성귀조차 힘주어 씹지 못하는 것을 두고
그동안 씹어 삼켰던 것을 생각하면
다름 아닌 기둥 하나를 흔든 일
종래에는 온 기둥을 다 뽑는 일이
나를 먹여 살린 일이었다는 것
세상의 물렁물렁한 일
물렁한 음식 앞에서도
이젠 단단히 각오하라는 뜻
마지막 폐업에 몇 숟가락의
쌀을 넣어주던 풍경이 떠오르는 것이다
더 이상 먹여 살릴 일이나
먹고 살 일이 영영 끝난 뒤에도
생쌀을 오래 물고 있을
기둥 없는 폐업처럼
그래서 속수무책이라는 말을
흔들리는 이빨이 지긋이
깨물어 보는 것이다


*시집/ 낮달이 허락도 없이/ 천년의시작

 

 

 

 

 

흔들리는 균형 - 이서화


물지게를 기억하시는지
아무리 가득 담아도 출렁출렁 흘리던 걸음
균형 하나가 제대로 잡히기까지
온전한 물통 속의 물은 손실이 크다
그래서 더욱 가득 담아졌던 물
미리 흘릴 균형까지 고려하고 담았었다
담긴 양이 제각각 달라도
물통에 남아있던 물은 늘 같은 양이었던가
균형은 어깨와 발걸음의
출렁거림이 아니라
물통의 그 수위에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그때
나의 균형은 다 흘러넘쳤다
빈 것들의 속내일수록 휘청거리기 쉽다
더 이상 흘려버릴 균형추가 없는
나이가 될수록 균형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
가령, 팔이 자꾸 안으로 굽는 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다툼 사이에서
균형은 또 그때처럼 흘러넘친다
봄, 바람이 출렁거리며 넘친 벚나무는 이미 바닥이 났고
평행을 유지하던 몸,
출렁거리던 옛 기억들도 감흥이 없다
그때, 오래도록 물이 다 새어나간
어깨가 살처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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