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오우아, 나는 나를 벗 삼는다 - 박수밀

마루안 2020. 9. 18. 22:46

 

 

 

이 책의 저자 박수밀 선생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고전을 쉽게 해석해서 대중적인 문장으로 쓴 저서를 몇 권 내기도 한 부지런한 학자다. 나를 벗 삼는다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럼 이 제목을 어디서 가져 왔을까. 

 

雪之晨 雨之夕 佳朋不來 誰與晤言 
試以我口讀之 而聽之者我耳也 
我腕書之 而玩之者我眼也 
吾友我 復何怨乎!

눈 오는 밤이나 비 오는 밤에 다정한 친구가 오지 않으니 누구와 얘기를 나눌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글을 읽으니 듣는 것은 나의 귀요, 내 손으로 글씨를 쓰니 구경하는 것은 나의 눈이었다.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았으니 다시 무슨 원망이 있으랴!

 

나를 벗 삼는다는 문구는 물질만능 시대에다 난데 없는 코로나 시기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저절로 부자가 되는 재벌 자제가 아니라면 사람이 세상에 나오면 배우고 깨우쳐 스스로 먹고 살 방법을 찾는 게 인생이다. 약육강식, 사람도 짐승의 세계와 별 차이가 없다.

 

박수밀 선생은 박지원과 이덕무를 많이 좋아하나 보다. 이 책에서도 이덕무의 시를 여럿 인용하고 있다. 나도 이덕무의 시를 좋아한다. 이 책의 아쉬움이라면 출처는 있는데 원문이 없다는 거다. 여기서 인용한 원문은 전부 내가 다른 곳에서 찾아 올렸다.

 

哀之來也 四顧漠漠  
只欲鑽地入 無一寸可活之念 
幸余有雙眼孔頗識字  
手一編慰心看 少焉 胸中之摧陷者乍底定  
若余目雖能視五色 而當書如黑夜 將何以用心乎

*이덕무 耳目口心書 


슬픔이 닥치면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막해서 그저 한 치 땅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고 살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어진다. 
다행히 나는 두 눈이 있어 글자를 배울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을 들고 마음을 위로하다 보면 조금 뒤엔 절망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안정된다. 
만일 내가 온갖 색을 볼 수 있다 해도 책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라면 장차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낀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덕무의 시에서 글자를 깨우치는 것이 얼마나 사람 운명을 바꾸는지 실감한다. 양반 자제 아니고서는 학교(서당) 가기 쉽지 않아서 글자 못 읽는 사람이 많던 시절에야 더했을 것이다. 

 

그래도 저자는 <모든 존재는 저마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갖고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고 말한다. 노동 시간 길기로 유명한 한국이다. 이 책에서는 강희맹의 만휴정기(萬休亭記)에서 가져온 문구를 인용해 휴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강희맹은 인생 아무리 오래 살아야 고작 백 년인데 모두들 근심 걱정에 얽매여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고 탄식한다. 맞다. 내 생각은 백 년은 너무 길고 인생을 80년으로 본다. 여기서 젖 먹고 걸음마 배우고 개구장이 철부지 시절 빼면 인생을 안 것이 스무 살 이후다. 80까지 건강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강희맹이 말 하는 것처럼 쉴 때는 좀 쉬자. 

악연에 대해서도 말한다. 조선조 문인 한충(韓忠)과 빼어난 문장가이지만 간신이라는 오명의 남곤(南袞)과 악연은 씁쓸하다. 인생에는 도움을 주는 친구도 있지만, 해를 끼치는 사람도 있다. 싫은 사람과 얽히면 자칫 삶을 송두리째 비극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남곤은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뛰어난 처세술로 조광조, 한충 등을 죽이고 영의정까지 오르며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사후에 모든 관작을 추탈당했다. 살았을 때 부귀영화가 중요하지 사후의 오명이 뭐가 문제겠냐면 할 말은 없다.

朱子의 勸學文(주자 권학문)과 함께 정호(鄭澔)의 노학잠(老學箴)이란 글을 인용하며 젊은 시절 배우면 좋았겠으나 늙어 배워도 늦었다고 말하지 말라 조언한다. 주자의 권학문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정호의 노학잠도 이에 뒤지지 않게 의미 있다. 권학잠의 일부 구절이다.

以燭照夜 無暗不明 
燭之不已 可以繼暘

촛불로 어둔 밤 비추더라도 어둠은 밝아지니 계속해서 비추면 밝음을 이어갈 수 있다

 

스승의 조건이라는 장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조선 후기 학자 정약용은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다산은 유배지 강진의 초당에서 저술과 가르침에 전념했다. 그 중에 평생 제자를 발굴하니 바로 화성을 설계하고 만든 황상(黃裳)이다.

 

다산을 처음 만났을 때 스스로 아둔한 머리를 가졌다고 탄식하던 15살 시골 촌놈을 가르쳐서 빼어난 인물로 길러낸 것이다. 훌륭한 스승 아래 훌륭한 제자 나온다는 말의 전형이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말하는 장에서는 이런 조언을 한다. 관계를 풀려다 오히려 힘만 빠진다. 매듭을 풀기가 너무 힘들다면 과감하게 단절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세상에 좋은 사람도 많은데 궂이 쓸데 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가 있겠는가.

 

오우아는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고전뿐 아니라 별로 책과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이 좋은 가을이지만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로 외출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책을 동무 삼아 가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