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소수자들의 삶과 기록 - 윤수종

마루안 2020. 9. 7. 22:18

 

 

 

세상엔 존재하지만 없는 듯 취급 받는 사람이 있다. 소수자들이다. 그들은 다수자에 밀려 소외 받거나 차별 받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쓴 윤수종 교수는 오랜 기간 소수자들의 삶을 기록한 연구자다.

 

이런 연구일수록 빛이 안 나기 마련인데 꾸준하게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학문을 출세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에 하는 말이다. 남이 안 가는 길을 걷는 일이 고단하기는 해도 이런 학자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소수자들의 삶을 기록한 내용이다. 탈성매매 여성, 병역거부자, 영창근무자와 수용자, 장애인, HIV 감염인, 성소수자 부모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별히 소외 계층에 관심이 없으면 잘 읽히지 않은 내용이다. 기록문이라는 것이 지루한 문장이기 마련이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노루처럼 두 귀를 쫑긋 하고 열심히 읽었다. 재미로 읽기보다 호기심으로 읽었다는 것이 맞겠다.

 

특히 영창 근무자와 수용자에 관한 글이 아주 인상적이다. 군대 갔다온 사람은 알겠지만 영창이란 단어는 괜히 두려움이 앞선다. 영창은 사회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가는 교도소처럼 군대 안의 교도소다. 나는 경험이 없지만 회자되는 말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영창이다.

 

철창에 갇힌 병사를 감시하는 근무자의 경험을 기록한 것과 철창 안에서 영창을 살았던 수용자 경험이 연달아 실렸다. 어쩌다 보니 영창을 가야했던 병사의 기록이 흥미롭게 읽혔다. 아파트는 주택이든 이웃 잘 만나는 것이 복이 듯 군대에서 후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다.

 

이 기록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선임 잘 만나는 것 또한 복일 것이다. 흔한 말로 군대에서 꼴통은 사회에서도 꼴통이고 군대에서 고문관은 사회에서도 고문관이란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군대라는 것 자체가 획일화된 규율 속에서 견뎌야 하는 의무 복무 아닌가. 한창 젊은 나이에 군대에서 보낸 세월이 인생 대학에 앞서 청춘 낭비기도 하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비싸게 치르고 있는 분단세다. 남북이 평화로우면 이 분단세 또한 낮아질 것이다.

 

청각장애인의 기록은 세상 분투기처럼 아주 유쾌하게 읽었다. 다른 장애인에 비해 비교적 겉으로 표가 덜 나는 장애여서 그럴까. 그러나 비장애인이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겪는 고통이 상당했다. 이 기록을 읽으면서 우는 애 젖 준다는 속담을 떠올렸다.

 

뒷 부분에는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다. 딸이 어느 날 남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어떨까. 어릴 때부터 남자처럼 행동을 했어도 조금 특이한 아이려니 했는데 성인이 되자 아예 남장을 하고 다닌다. 다소 당혹스런 처음과는 달리 차분히 받아 들인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라며 펄쩍 뛰던 남편도 아내의 긍정 바이러스에 서서히 전염이 된다. 온 가족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예전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졌다. 숨기려고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성소자 부모의 인생 기술이 놀랍다.

 

게이 아들을 둔 엄마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왜 하필 내 자식이 했다. 이런 경우를 연속극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하던가. 엄마도 이내 삶의 기술을 발휘한다. 어쩌다 저런 놈이 나왔을까가 아니라 내가 너를 이렇게 낳아서 미안해로 바꾼다.

 

이런 경우 누구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없던 자식으로 여기겠다며 의절을 하거나 평생 가슴에 응어리를 담고 사는 사람도 있다. 돌이킬 수 없을 때는 그것이 운명이라며 받아 들여 차선의 평온을 찾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소수자, 그들의 삶이 어둡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