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 - 이운진 시집

마루안 2020. 9. 8. 22:36

 

 

 

가능하면 천년의시작에서 나온 시집은 빼 놓지 않고 읽는다. 모든 시집을 내 것으로 만들 순 없지만 애정을 갖고 주목하는 출판사다. 만든 이보다 쓴 이에게 더 눈길을 줘야 마땅하지만 그래도 메이저 출판사 빼고 가장 활발하게 시집을 내고 있어서 다행이다.

 

가끔 함량미달의 시집을 만날 때면 난감하지만 그건 시 읽기에 미숙한 나에게 책임이 있다. 난감함을 무심함으로 바꾸고 나와 인연이 없는 시인이려니 그냥 스쳐 지나가면 된다. 좋은 시와 나쁜 시의 경계 또한 하늘에 긋는 선처럼 모호해서 부질없다.

 

그저 나는 아무 감명이 없고 가슴에서 헛돌기만 하는 시를 열심히 해설하는 평론가들에 감탄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시 읽는 기술도 있는 모양이다. 이 시집은 지나쳤다가 우연히 다시 만난 시집이다. 내가 만든 표현으로는 이삭줍기 시집이다. 

 

읽어야지 했다가 지나친 후에 이미 지나간 길을 다시 되돌아와 우연히 만날 때가 있다. 관심 뒀던 여자에게 차이고 나면 조금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관심 가던 시집은 놓쳐도 그리 후회가 없었다. 차였던지 놓쳤던지 시집도 사람도 일단 만나 봐야 어떤지 안다.

 

<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는 이운진의 세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은 인연이 닿지 않아 읽지 못했고 처음 읽은 두 번째 시집에서 어? 눈여겨 볼 시인이네 했다. 늦게라도 마음 가는 시인을 만나면 당연 첫 번째 시집을 두더지 고구마 캐듯 찾아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10년을 세워도 허공 속이다/ 제겨디딜 한 뼘 바닥도 없는 곳!/ 하지만 이 위태로움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단 세줄의 自序에 오래 눈길이 갔다. 고독을 숙성 시키느라 무척 더디게 시집을 내는 시인이었다.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세 번째 시집이 나왔다.

 

놓칠 뻔했던 시집에게 미안할 정도로 마음을 움직이는 시로 가득하다. 슬픔, 어둠, 그리고 상처, 세 어휘로 집약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시가 정갈한 슬픔이 배어 있다. 처지는 시 없이 고른 것도 시를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힘이다. 마음을 오래 붙잡는 한 편의 시가 있다.


별이 떨어지고
어디든 날아가기 좋은 밤이다

나를 가져가서 나를 바꿔놓고 나를 버린
사랑을 잊을 수는 있어도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검은 하늘 검은 구름 검은 공기 속으로 사라져야지 -<떠돌이까마귀처럼> 부분

 

뒷부분에 실린 이 시에 완전 꼬구라졌다. 지하철 승강장 벽에 붙이기에는 너무 고급지고 슬프다. 각도가 꺾인 투명한 가을 햇살과 잘 어울리는 시다. 쑥부쟁이 향기 밴 이슬을 막 떨궈낸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슬픔이 느껴지는 시집이다.

 

잘 가라고 인사를 했건만 자꾸 뒤돌아보고 싶은 사람을 보내는 심정이랄까. 상처를 스스로 치료할 줄 알고 슬픔을 살아가는 에너지로 쓸 줄 아는 것도 삶의 기술이다. 시인의 성품이 잘 드러나고 긴 여운이 남는 기막힌 구절이 또 있다. 

 

만약 다음 생에 또 온다면
그땐 벼랑에서 바람을 걱정하며
슬픔에 탈진하는 날들을 살아보고 싶은지 -<재스민 나무의 데스마스크를 보며> 일부

 

난데 없는 코로나에, 질리도록 긴 장마에, 처서 지나도 물러나지 않던 폭염에, 올 여름은 최악이었다. 절친에게 오는 안부 문자보다 재난문자를 더 많이 받은 여름이라니,, 이런 시집이라도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연이어 들이닥친 태풍이 폭염을 밀어냈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공원 벤치와도 잘 어울리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