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근대 장애인사 - 정창권

마루안 2020. 9. 3. 19:31

 

 

 

참 좋은 책 읽었다. 이런 책이 많이 팔릴 리 만무하고 또 연구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1등보다 2등에 더 눈길이 가고 주류보다 비주류의 길을 걷는 사람을 좋아한다. 모두가 인싸가 되기 위해 몰려다니지만 세상엔 인싸만 사는 것이 아니다.

 

지은이 정창권 선생은 장애인 연구를 오래 하신 분이다. 예전에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이후에도 몇 권의 좋은 책을 냈으나 이 책 외엔 읽지 못해 아쉽다. 어쨌든 이 책은 장애인 연구의 결정판이랄 수 있다.

 

불경과 성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나온 사람은 모두 소중하건만 실제 그렇던가. 이 책은 옛 문헌에 나온 장애인 기록과 근대에 들어 더욱 핍박 받으며 살았던 그들의 삶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호칭은 최근에 만들어졌다.

 

1900년대 신문에 이런 기사가 보인다. <대저 하늘이 사람을 내심에 사람마다 다 같지 아니하며 여러 가지 병신이 있으니, 앞을 보지 못하는 이와,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이와, 앉은뱅이와 저는 이며, 또 여러 병신이 있는지라,,>.

 

신문 기사처럼 오랜 기간 민간에서 장애인을 병신이라 칭했다. 호칭이자 비하하는 욕이기도 했다. 그러다 개화기 때 불구자라는 말이 사용된다. 이는 후구샤(不具者)라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지체장애인의 명칭으로는 절름발이, 골배팔이, 외다리, 앉은뱅이, 곱사등이, 난장이 등이 있었다.

 

요즘은 발병하지 않지만 문둥병으로 불렸던 한센병은 흔히 천형으로 여겼다. 이 병에 걸리면 처자식이나 가족에게 버림 받고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구걸을 했기에 공포와 기피의 대상이었다. 일제시대에는 넘쳐 나는 환자를 소록도에 격리시켰다. 

 

치료가 쉽지 않다는 간질은 지랄병으라 불렀으나 장애인 비하라 해서 요즘은 뇌전증으로 부른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육을 사용하는 풍습이 있었다. 뇌전증(간질)과 한센병(나병)에 인육을 쓰곤 했다. 인육을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 때문에 산 아이를 잡아다 장기를 꺼내 먹이고 시체를 도둑질하기도 했다.

 

그냥 전해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예전의 신문 보도에 종종 이런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기록이 나온다. 나도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이 쉬쉬하면서 속삭이는 대화를 들었다. 아무개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 공동묘지를 파헤쳐 사람 뼈를 훔쳐다 고아 먹였다는,,

 

비장애인도 살기 힘들었던 과거에 장애인의 삶은 오죽했을까. 태어나자 죽임을 당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설사 살아 남았다 해도 온갖 놀림과 차별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래도 살아 남은 사람은 대를 잇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병신을 낳은 집안은 대를 이어 병신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장애인에게 단종을 단행했다. 단종 방법으로 결혼 금지, 격리피임, 인공유산 등이 있으나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남자의 수정관과 여자의 수란관을 절단하는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장애인 중에 시각 장애인 숫자가 가장 많다. 언청이가 가장 많았다지만 장애인 축에 들기나 했을까. 옛날의 시각장애인은 주로 점복과 독경으로 생활을 영위했다. 그들을 일컬어 판수라 했다. 당시에는 시각장애인이 되면 곧바로 점복이나 독경을 배워 판수가 되었다.

 

지금은 분야가 넓어졌으나 주로 안마사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이 많다. 저자는 마지막에 장애인으로 성공한 예술가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한하운, 구본웅 등 대부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가능했다. 맞다. 지금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밑바닥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장애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전에 이유 없이 시작된 허리 통증으로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멍석 말듯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가 바닥을 짚고서야 일어 날 수 있었다.

 

오른 손가락 하나를 다쳐 붕대를 감고 며칠 물을 묻히지 않아야 했다. 한 손으로 머리를 감으며 오른 손의 소중함을 알았다. 그때의 불편함으로 내 몸이 성한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았다. 세상에 버릴 사람 없듯 장애인의 삶도 존중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