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 정만춘

마루안 2020. 8. 29. 22:20

 

 

 

제목이 특이해서 고른 책이다. 출판계도 불황이어선지 제목으로만 낚고 내용이 부실한 책들이 넘쳐나는데 이 책은 제목도 인상적이지만 내용물 또한 아주 흥미로웠다. 이 책은 네 명의 연인과 살아 본 동거의 기록이다.

 

저자 정만춘은 여자다. 일부러 남자 이름처럼 지은 예명같이 보이지만 본명인지도 모른다. 제목을 본 후 내용물에 앞서 날개에서 약력을 살폈다. <한 트럭의 사람과 썸을 탔다. 연애한 사람은 봉고차 한 대에 태울 만큼, 동거한 사람은 승용차에 비좁게 앉힐 만큼 만났다. 외국인과의 연애도, 폴리아모리도 해본 적 없으니 꽤 보수적인 편이라 주장해 본다>.

 

폴리아모리? 이 단어에 막힌다. <비독점적 다자연애, 非獨占的 多者戀愛>다.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데 뜻을 명확히 알자 책의 내용물이 궁금해졌다. 책 제목에 낚인 게 아니라 내가 책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정만춘이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였고 약력만 보고 그녀를 섹X이라 생각했다. 남자 밝히는 여자를 섹X이라 하기에 이 단어는 청소년 보호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여자 밝히는 남자는 정상이고 남자 밝히는 여자는 비정상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기도 하다.

 

입구에서부터 저자는 이 책이 <동거 권장 도서>라고 선전(?)을 한다. 그렇다고 결혼 생활에 대한 비난이나 제도 안에 들어간 사람에 대한 반발로 읽히지 않길 바라며 제도 안에서 안정적 가정을 꾸리는 이들을 응원한다는 보험증서를 보여준다.

 

그의 동거는 문란하지 않다. 저자는 <우리의 동거는 술과 섹스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한다. 나부터 동거라는 단어에서 섹스에 환장한 커플을 떠올렸다. 모텔비도 아끼고 보다 안전한 섹스를 위해 동거를 택한다고 생각했다. 

 

뜨거우면 솥뚜껑도 놓치고 발등을 찍힐 법한데 그런 격렬한 애정 행각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내켜서 한 번 살아보는 것 정도다. <함께 살아보고 나서야 나는 내가 그의 어떤 부분을 가장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참을 수 없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건전한(?) 그의 동거 생활은 찐한 섹스로 점철되는 결합으로 진화할 줄 알았다. 포르노도 그렇지 않던가. 처음에는 남녀 둘로 시작했다가 여자 둘에 남자 하나거나 남자 둘 여자 하나로 바뀌면 침을 꼴깍 삼키다 결국 나는 허벅지를 부르르 떨고야 말았다.

 

첫 번째 동거에서 수업료를 단단히 치른다.  '잘생긴 남자와는 3개월, 마음이 잘생긴 남자와는 3년, 요리 잘하는 남자와는 30년이라는 명언(?)이 그저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을 설레게 했던 남자에 대한 감탄을 접는다. 

 

첫 동거를 청산하면서 "내가 다시 동거를 하면 성을 갈지" 했다. 새로운 연애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심 반 년 만에 성을 갈아야 할 일이 생긴다. 두 번째 동거는 대학 때 잠시 사귀던 남자다. 남자는 그걸 첫사랑으로 여긴다.

 

마침 남자의 살이 그리웠던 저자는 우연히 다시 연락을 하다 동거에 이른다. 결혼을 바라는 남자와의 입장 차는 점점 벌어진다. 그리고 연애할 때 안 보였던 단점이 동거를 하면서 보이기 시작한다. 또 동거를 청산한다. 

 

저자는 세 명의 남자와 살다 헤어진다. 그러나 나쁘게 이별하지 않는다. 함께 살기로 할 때도 이유가 있었듯이 헤어질 때도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쿨하게 작별한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이 여자 보통 섹X이 아니구나 했다.

 

읽어가면서 두 사람의 결합이 꼭 결혼이여만 하냐는 저자의 주장에 점점 설득당했다. 글도 아주 맛깔스럽게 잘 쓴다. 그리고 네 번째 동거에 반전이 있다. 네 번째 동거인은 여자다. 동성 사실혼 관계다. 뜻밖의 반전에 확 깨면서 당황스러웠다. 

 

다소 혼란스런 마지막 장을 읽고서 그녀의 당당함에 설득당했다. 양성애자로 비혼을 선택한 그녀는 이 선택도 사치라고 말한다.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따름이다. 덜 사랑해서 동거하나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