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자서전 - 이우근

마루안 2020. 9. 2. 19:20

 

 

자서전 - 이우근


가을비 같았고
깨소금 같았고
은박지 같았고
시금치 같았고
찬물 한 그릇 같았다, 고
싶었던 스무 살 무렵도 있었습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형편없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입니다
그렇지만 그냥 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떠밀려 가더라도 손 내밀고,
혹은 끌려가더라도 드러누워 버팁니다
다만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맑게 지켜봅니다
그 마음의 부동자세,
지속적이고 싶은, 다만 간절함으로.


*시집/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도서출판 선

 

 

 



낙화(洛花) - 이우근


피는 꽃과 더불어 지는 꽃이 있어,
주류(主流)에서 벗어나 추방을 당하며,
시절과 기후를 감지하여
혹은 생육에 밀려 낙하할 때,
단말마의 항변과 야유가 퇴행이 아님을,
그 꽃은 알고 잎은 알고
본질인 나무는 알리라

달콤한 열매에의 그 긴 시간의 여정에
일말의 역할, 그 소임을 했다고 하면,
이만큼 멀어져 뒤를 돌아본다는 것
의미가 없지 않으리

우리는 생리적인 한계로 지금, 내리지만
분분하게 내리지만,
그냥, 내리지만

그래서 피고 지는
봄의 연속이다

가을은
저기에,
천천히 온다

순환 혹은 윤회를 안다면
생이 참 무섭고 가혹하고 행복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무책임에 기대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