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죽음을 배우는 시간 - 김현아

마루안 2020. 8. 23. 19:08

 

 

 

참 좋은 책을 읽었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의사협회가 대규모 집회를 열고 파업을 예고하며 정부와 대립하는 시기였다. 그동안 여러 문제로 정부와 불편한 관계였던 의사협회가 의대생 정원을 늘리는 문제로 더욱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정부 정책에 동의한다. 이 책의 저자는 현역 의사다. 나는 언제가부터 의사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저자가 글도 잘 쓰고 개념 있는 의사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 가본 놈과 안 가본 놈이 싸우면 안 가본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많은 분야에서 이론으로 무장한 얄팍한 지식으로 전문가 행세를 하며 대중을 현혹하는 돌팔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의 저자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죽음을 생생하게 말하고 있다.

 

이런 것이 참 지식이요 영양가 있는 내용이다. 요즘 죽음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이 책만큼 만족도가 높은 책은 없었다. 자기 개발서니 제테크 노하우니 하는 책보다 이런 책을 읽어 양식으로 삼을 일이다. 노년(아니면 중년)의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사람은 40대부터 늙는다지만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다. 노화에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보면 40대부터 늙는다는 말이 맞다. 안 보이고, 안 들리고, 여기도 쑤시고 저기도 아프고 그러다 못 걷고, 못 먹게 되면서 죽음에 이른다. 책 속에서 뽑은 몇 개의 문장을 옮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숙환으로, 지병으로, 암이나 심혈관계 질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병원에 생사결정권을 넘겨주고 생을 마무리한다.  병원의 '죽음 비지니스'에 속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지 알리기 위함이다.

 

노화에 의한 자연사라는 만고의 진리가 무색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쇠약해진 노인이 사망하는 맨 마지막 단계, 근력 약화에 의한 활동력 저하-> 식이 섭취 부진 -> 영양실조 및 탈수에 의한 장기 기능 저하 -> 인두근 약화에 의한 흡인과 폐렴 -> 사망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처치가 가능한 질환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노화가 진행되면 자질구레한 질환들이 찾아온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망하기 1년 전 10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한 사람의 거의 50퍼센트에 육박한다. 그에 따라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의 갯수도 점점 늘어난다. 가장 많이 복용하는 약제는 진통제로 61퍼센트, 혈전억제제, 향정신성 약물이 각각 54퍼센트, 51퍼센트였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아픈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환자도 매우 많다. 그만큼 죽음 자체보다 환자를 더 괴롭히는 증상은 통증이다.

 

오늘날 대형병원의 중환자실을 다녀보면 거의 모든 환자가 고령임을 확인할 수 있다. 촌각을 다투는 중대한 병을 앓고 있지만 치료를 받으면 온전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자들이 치료받아야 할 공간인 중환자실은 이미 노인들이 삶을 마감하는 장소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같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수명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인자는 그 사람의 경제력이라는 연구 결과는 이미 유명해진 지 오래다. 같은 폐암에 걸려도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돈 앞에서는 죽음도 더이상 평등하지 않다.

 

나의 소멸이 끝이 아닌 나의 삶의 완결이라는 생각을 가지기 힘든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멸에서 미래를 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존엄사나 연명치료에 대한 논의는 허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