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느 낯 뜨거운 날의 상념 - 윤일균

마루안 2020. 8. 19. 22:22

 

 

어느 낯 뜨거운 날의 상념 - 윤일균


파리에 달라붙은 개미
맥없이 손가락으로 개미를 비빈다

부슬비 오는 마당을 지렁이가 기어간다
맥없이 구두발로 지렁이를 밟는다

이슬에 젖은 쌀잠자리 꼬리를 잘라
맥없이 시집을 보낸다

살다가 보니 살다가 보니
이땅에 내가
개미요
지렁이요
잠자리인 것을

집개미 무리 지어 꿀병을 넘나 들고
지렁이 어린 동생 고추 끝을 쏜대도
잠자리동동 파리동동 날아들어도

너희들이 나인 것을
내가 너희들인 것을


*시집/ 돌모루 구렁이가 우는 날에는/ 도서출판b

 

 

 

 

 

 

꽃밥 - 윤일균


말복 되도록 이슬로 연명하는 잡초
여전한 마른장마
해 뜨자 숨 턱턱 막히는 또 하루
밥 푼다
몽골인 고려인 러시아인 서성대는
궁핍한 거리에서
한두 끼 허기 달래기도 버거운
눈빛들 서성이는 거리에서
땀 젖은 밥을 푼다
힘 부쳐 웅크린 자리마다
허방의 눈빛
그 눈빛으로 꾸욱 눌러
맨 처음 푼
꽃밥
아랫목 이불에 묻던 아버지의 진지
그 마음으로
허방의 눈빛 이름으로
연달아 몇 그릇
아예
제껴도 보는
저 사람




# 윤일균 시인은 1956년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2003년 <시경>으로 등단했다. <돌모루 구렁이가 우는 날에는>이 첫 시집이다. <시와색>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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