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당신이라는 갸륵 - 김인자 시집

마루안 2020. 8. 12. 23:08

 

 

 

김인자 시인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아마도 여행 산문집이었을 것이다. 이따금 도지는 무당의 신기처럼 떠돌기를 좋아해서 여행책이라면 무조건 읽고보는 시절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떠나고 싶은 마음만 앞설 뿐 차일피일, 흐지부지 지나가기 일쑤다.

 

이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여행도 일종의 중독이다. 거기다 해외 여행도 자주 가는데 남이 안 가는 낯선 여행지를 간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곳보다 아무나 가지 않는 그의 여행지가 마음에 들었다. 일종의 비주류 여행지다. 이런 여행에 환호하는 것은 내가 아웃사우더여서 더 그럴 것이다.

 

예전에 그가 쓴 <아프리카 트럭 여행>이라는 산문집을 읽으며 느꼈던 것도 그가 지독한 여행 중독자이면서 아웃사이더라는 것이다. 트럭을 개조한 버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 탄자니아, 케냐 등 낯선 나라의 여정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이런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전 <아무것도 아닐 때 우리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라는 산문집을 냈는데 이 시집 <당신이라는 갸륵>과 함께 읽었다. 여전히 여행에서 건져 올린 문구가 가슴을 울린다. 그 산문집에 실렸던 시도 여러 편이 이 시집에 실렸다.

 

쓸쓸한 여행길에서, 낙엽 지는 숲길에서, 눈 내리는 오두막 집에서 건진 시편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편처럼 끊을 수 없는 여행길에 지친 다리를 추스리느라 그랬을까. 긴 시간 시집을 내지 않았는데 이번 시집은 16년 만에 나온 다섯 번째 시집이다.

 

40대 후반에 나온 네 번째 시집에서 느꼈던 쓸쓸함이 60대 중반의 다섯 번째 시집에도 여전하다. 만들어낸 쓸쓸함이 아니라 주류를 탐하지 않는 자기 만의 길에서 저절로 스미는 쓸쓸함이다. 분주함 속의 쓸쓸함은 타고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김인자 시인은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시집을 펼치면 시에 친숙하지 않는 독자도 단번에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쓴다. 시 읽는 기쁨을 알게 하는 시인이라고 할까. 거창한 문학적 이론이나 치장 없이 시인의 사유에서 나온 쉬운 싯구가 마음을 움직인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코로나 때문에 온 세계가 마비 되었다. 바이러스가 지구인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막힌 여행길 또한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는 시국에 이런 시집으로 잠시 위로를 받는다. 숨어 있는 시집과의 만남 또한 참으로 고운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