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길이다 - 조성순
순례자여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마라.
오직 자신을 의지하고
스스로 길이 되어야 한다.
가고 있는 길이
의심나고 두려울 땐
걸음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내면에
귀 기울여 보라.
그러면
조개껍데기 골이 모이거나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그곳이 바로
야보고가 오신 길을
네 눈으로 말씀한 것이다.
당황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라.
느릿느릿
천천히
길이 열린다.
네가
바로 길이다.
*시집/ 그리고 나는 걸었다/ 행복한책읽기
길 - 조성순
혼자 걸을 때
길은 말합니다.
묻지 않아도
가야 할 곳을 보여줍니다.
바람이 오고
물소리가 옵니다.
고요 속에
딱따구리가 딱딱
풀벌레가 푸륵푸륵
가슴으로 진격해 옵니다.
홀로 걸어야
길이
옵니다.
여럿이
왁자지껄 갈 때
길은 침묵합니다.
온전히 만나지 못합니다.
홀로 나서면
길이 마중을 오고
어깨동무를 하고
못 보던 곳을
보여 줍니다.
길이
길답게 됩니다.
*자서
올레 길의 여러 구간을 혼자 걸었다.
어느 날 문득 길이 말을 걸어왔다.
산티아고를 가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2016년 3월 말에서 5월 초까지
프랑스 생장을 출발하여 산티아고를 거쳐
스페인 북단 묵시아까지 920여km 남짓 걸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 대한 늦은 답신이요.
게으른 농부의 추수이다.
길에서 만난 유정무정(有情無情)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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