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딱딱하고 완고한 뼈 - 김대호

마루안 2020. 7. 23. 22:52

 

 

딱딱하고 완고한 뼈 - 김대호


뼈를 만진다
손목뼈를 만지고 광대뼈도 만진다
내 형식을 완성한 뼈의
굴곡이 내 근황이다

손가락 몇 개가 뼈의 굴곡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내 안의 습곡을 찾아다니는 일보다 뼈를 만지는 일이 쉽다
쉬우면서 금방 진단이 나온다
너무 딱딱한 걸 숨기고 있구나
문어같이 기어다니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이 뼈의 완고한 구조가 불만이구나

유치가 찬란한 한낮
새가 날아간 도로 쪽 허공에 손가락을 펴 대보았지만
손가락뼈는 탁본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있는 흰 뼈들의 상세한 근황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 확인했다
동면에 들어간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웃고 발랄하고 찡그리고 헛되었는데 그 일체가
동면 중에 꿈꾸는 사건들이었다

깨어나기에 적당한 기온이 찾아왔을 때 내 뼈의 배열은 어떤 현실이 될까
손목뼈를 광대뼈를
현실이라고 믿으며 다시 만진다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걷는사람

 

 

 

 

 

 

구조만 있는 - 김대호


내가 풍화되면
흰 뼈로 이루어진 골격만 남을 것이다
안팎이 없고 앞뒤가 모호하고 구강의 감정은 사라지고 구조만 떠 있을 일이다
이 황망한 미래는
암이 걱정돼 찾아간 병원에서 엑스레이로 투시할 때
이미 확인했다
나는 몰라서 못 하는 것보다 알면서도 안 하는 경우를 더 많이 가졌다
투과된 사진에서 내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자꾸 내 안에 무엇이 있다고 믿는다

알면서도 믿는다
기쁨과 슬픔이 3초 만에 성체가 되고 3초 만에 소멸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오래된 노력에서 온다고 믿는다
순간
응급센터 쪽에서 주차장 쪽으로 바람이 기울었다
구조만으로 이 바람을
이 날짜들의 풍향을 기억할 수 있을까
아프다는 것은 이미지가 되어 간다는 것
청색과 회색의 이분법은 이미지의 고집이 끼어드는 일

골격만 남았을 때
웃음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뼈가 몇 개였는지
나는 기억해낼 수 있을까



 

# 김대호 시인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2012년 <시산맥>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천강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가 첫 시집이다. 시를 아주 잘 쓴다. 다음 작품이 기대 되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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