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 박선민

마루안 2020. 7. 22. 19:15

 

 

 

나이 먹을수록 점점 정치적으로 변한다. 신문을 봐도 늘 문화면이 먼저였는데 지금은 가장 먼저 정치면이다. 예전에 정치면은 건너 뛰거나 봐도 건성으로 봤다. 투표는 꼬박꼬박 했으나 내가 사는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누군지는 까먹기 일쑤였다.

심지어 내가 사는 곳의 구청장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물며 내 지역구에 시의원이 몇 명 있는 줄 알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시의원 이름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살지 않는 지역구의 국회의원 이름을 꽤 많이 기억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더욱 정치적으로 변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난데없는 가짜 정당이 출현하면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소수정당을 배려하기 위해 좋은 뜻으로 개편한 선거제도가 이렇게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허점을 파고들어 가짜 정당을 만든 보수당만을 무조건 몰아부칠 일은 아니다. 정치란 시시각각 변하는 생물이어서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 냉정한 곳이다. 선거제도를 개편할 때 애초에 이런 꼼수를 부리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데 정의당은 너무 순진했다.

정의당을 들먹이는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오랜 기간 정의당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의 쓸모를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의당 하면 떠오르는 노회찬 의원은 내가 정치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만든 사람 중 하나였다.

공교롭게 내일(7월 23일)이 노회찬 2주기다. 당신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조문 행렬 속에서 다짐했다.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깨어 있는 것, 그리고 1년에 한 번은 당신의 묘소를 방문하는 일 정도다. 그때 날씨는 왜 그렇게 삶아 죽일 듯 덥던지,,

그럼 보좌관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국회의원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러나 일은 죽어라 하면서 공(功)은 국회의원이 다 가져가는 직업이기도 하다. 거기다 의원 맘대로 채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부실한 고용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쓴 박선민은 능력있는 보좌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정치인 밑에는 꼭 보이지 않는 내조자가 있기 마련이다. 일 잘하는 국회의원도 보좌관 하기 나름이다. 이름은 남자처럼 보이나 여성이다. 공감이 가는 구절 몇 군데를 옮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다. 권력을 선용해 시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일에 성실하게 임하고, 시민의 대리자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감당하면서도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다>.

<좋은 제도를 마련하면 정치가 좋아질까?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정치체계다. 상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민주주의는 선하기는커녕 인간의 야비한 본성을 끌어내는 데 탁월하다. 제도만으로 좋은 정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제도를 잘 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법은 행위에 대한 사후적 처벌, 이를 회피하기 위한 자발적 복종에 머무르지 않는다. 법은 권력을 통제하고, 폭력을 억제하고, 기본권을 보호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법이다. 법치국가에서 법은 힘이 약한 사람과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집단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 힘이 센 사람과 목소리가 큰 집단은 굳이 법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스스로 충분히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혼자 할 수 없다. 좋은 팀이 필요하다. 우리는 때때로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 정치 영역에 들어와서 길을 못 찾고 헤매는 경우를 본다. 특정 영역에서 능력있는 사람이라도 정치를 잘 하기는 어렵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기보다 자신의 의견과 판단을 고집하기 쉽다>.

국회가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권력 기관인데도 국민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다. 일은 안 하고 쌈박질이나 하며 세비만 축낸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그러나 국회를 알아야 내 삶이 더 잘 보인다. 필독서란 이런 책을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