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상회 - 김요아킴
바다상회의 주인은 바다다
재생되는 내 기억의 필름 속에서
늘 손님을 맞고 있다
그 한 평 남짓한 자리에서
조수 간만의 차이만큼을 버텨내고 있다
이른 새벽에서 늦은 밤 귀갓길까지
햇빛과 형광등을 달리하며
세월을 소금에 절이고 있는 것이다
뱃고동처럼 우웅거리는 녹슨 냉장고 속은
캔버스의 정물화로 놓여지고, 가끔씩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몇몇의 날갯짓에
바다는 파리채를 흔든다
간혹 누군가 흘리고 간 막걸리는
허연 폐수로 밀려와 좁은 해변을 더 밀어내고
빵 봉지 마냥 부푼 섬이, 납작
바다에 엎드려 자맥질을 한다
저 멀리 뒷산이 파라솔처럼 고운 그늘을 펼치면
반질반질한 계산대 탁자 모서리로
반짝거리는 나의 손때가 더해진다
바다상회의 손님이 바다가 된다
*시집/ 공중부양사/ 도서출판 애지
경계 - 김요아킴
-금곡동 아파트
고당봉 금샘이 넘쳐흘러
해지는 곳으로 이르는 대천천을 끼고
남과 북은 나뉜다
쉽사리 건널 수 있는 다리의
저 끝과 끝의 이름은 서로 다르다
콘크리트 평수와 교환가치는
애초부터 달랐다
아이들 머릿속에도 전생처럼
경계가 지어졌고, 또 경계를 했다
내가 자는 머리맡은 당연히 남쪽을 향했고
집 이름도 그쪽을 본 땄다
누구나 밤마다 산책을 하고
하얀 달이 뜨면 삼삼오오 몰려드는 대천천, 그 경계에
한 건물이 자리해 있다
잿빛 가사를 입은 꼭대기 층의 사내와
그 아래층 로만칼라의 사내가 동거를 한다
음력 4월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양력 12월의 연등이
1층의 다이소 불빛처럼 환하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황을 긋다 - 이무열 (0) | 2020.07.19 |
---|---|
분꽃 - 김왕노 (0) | 2020.07.19 |
나무에 걸린 은유 - 전영관 (0) | 2020.07.18 |
기억처럼 세상에 왔다 가다 - 김인자 (0) | 2020.07.17 |
비석의 출구 - 김성장 (0) | 2020.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