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다상회 - 김요아킴

마루안 2020. 7. 18. 22:38

 

 

바다상회 - 김요아킴

 

 

바다상회의 주인은 바다다

 

재생되는 내 기억의 필름 속에서

늘 손님을 맞고 있다

 

그 한 평 남짓한 자리에서

조수 간만의 차이만큼을 버텨내고 있다

 

이른 새벽에서 늦은 밤 귀갓길까지

햇빛과 형광등을 달리하며

세월을 소금에 절이고 있는 것이다

 

뱃고동처럼 우웅거리는 녹슨 냉장고 속은

캔버스의 정물화로 놓여지고, 가끔씩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몇몇의 날갯짓에

바다는 파리채를 흔든다

 

간혹 누군가 흘리고 간 막걸리는

허연 폐수로 밀려와 좁은 해변을 더 밀어내고

빵 봉지 마냥 부푼 섬이, 납작

바다에 엎드려 자맥질을 한다

 

저 멀리 뒷산이 파라솔처럼 고운 그늘을 펼치면

반질반질한 계산대 탁자 모서리로

반짝거리는 나의 손때가 더해진다

 

바다상회의 손님이 바다가 된다

 

 

*시집/ 공중부양사/ 도서출판 애지

 

 

 

 

 

 

경계 - 김요아킴

​-금곡동 아파트

 

 

고당봉 금샘이 넘쳐흘러

해지는 곳으로 이르는 대천천을 끼고

남과 북은 나뉜다

 

쉽사리 건널 수 있는 다리의

저 끝과 끝의 이름은 서로 다르다

 

콘크리트 평수와 교환가치는

애초부터 달랐다

 

아이들 머릿속에도 전생처럼

경계가 지어졌고, 또 경계를 했다

 

내가 자는 머리맡은 당연히 남쪽을 향했고

집 이름도 그쪽을 본 땄다

 

누구나 밤마다 산책을 하고

하얀 달이 뜨면 삼삼오오 몰려드는 대천천, 그 경계에

한 건물이 자리해 있다

 

잿빛 가사를 입은 꼭대기 층의 사내와

그 아래층 로만칼라의 사내가 동거를 한다

 

음력 4월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양력 12월의 연등이

1층의 다이소 불빛처럼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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