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다황을 긋다 - 이무열

마루안 2020. 7. 19. 19:06

 

 

다황을 긋다 - 이무열


마지막 다황공장 경상북도 의성의 '성광'을 아는가
한때, 전국에 공장이 삼백 곳 넘었고
최초로 세워진 곳은 인천의 '대한'으로
일제 땐 한 곽에 쌀이 한 되였다는데
몰래 훔쳐가곤 했던 탓일까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치마 밑에 감추고서 정문을 나설 때
치마 밑에 불이 붙어~
그런 ,얼치기 군가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 젖히곤 했다
인천의 '대한'이나 부산의 'UN'도 어느덧 문을 닫고
먼 바다 나가는 뱃사람 부적이나
곰방대 끼고 살던 외할머니 신주단지 같던
다황, 까맣거나 빨간 두약(頭藥) 알맹이
푸르른 불꽃으로 일렁거리던 고등학교 시절
만홧가게 골방을 들명날명 뻐끔담배 배우곤 했다
오지 않을 누군가 그리워 죽치던 맹물다방
사이먼&카펑클이나 애니멀스를 신청하고는
3층, 5층, 7층...무너지면 다시 성냥개비 탑을 쌓곤 하던
한 집 건너 성냥갑 부업을 했다는
저 '성광'의 1970년대
나도 왕년에 한가락 놀았다면 논 것 아니었을까
담배 끊은 지 십수 년도 지났건만
오늘은 유황 냄새 피어오르던 그때처럼
따닥 따닥, 다황이든 당황이든
다시 못 올 낭만의 마찰판을 그어보고 싶다


*시집/ 묵국수를 먹다/ 문학세계사


 




굴뚝같다 - 이무열


날씨는 꿉꿉하고
온돌에 등이라도 지지고 싶고
국수틀이나 솥뚜껑을 아내 쪽으로 슬며시 디밀어 보는데
한사코 밀가루 반죽 치대는 어머니 손이 오늘따라 심하게 떨린다
노인 되면 으레 그러려니
핑계 삼아 세월을 견뎌 보고자 하는 것인데
유년의 만화경 속에는
양철다라이와 항아리와 바께스마다 빗물 고인 여름날 저녁이
흔들고 피박 씌울 때처럼 왁자하게 몰려온다
구불구불 말린 멍석 다 펼치기도 전에
들들들들 맷돌에는 되직하게 녹두가 갈리고
채 썰고 버무리고 기름 둘러 온갖 양념에 채소 돼지고기로 빚은
고스톱 판처럼 걸쩍지근한 녹두전과 막걸리 한 상을 차린다
오글오글 사촌 아니면 육촌 계집애들과 장맛비에 척척 감기는 손목 때리기 패를 돌리랴
외할머니 어깨 너머로 훔치던 신수보기 화투장을 떼어보랴
그 예전 젊은 어머니는
곰방대에 풍년초 쟁이고 연신 구름과자 피워 올리던 외할머니처럼
-목 맥히겄다 년석아 좀 천천히 묵어라
-논빼미 물 들어가고 자석 입에 밥 들어가 좋을래라
뭉게뭉게 자꾸 그런 군말을 털어내고 있는데
님 소식이나 돈 횡재 그런 패를 꿈꾸던 날은 굴뚝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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