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금니의 소유권 - 권혁소

마루안 2020. 7. 15. 21:57

 

 

금니의 소유권 - 권혁소

 

 

남의 살을 조금 더 암팡지게 씹기 위해

금으로 씌워 근근이 버텨오던 어금니를 빼고

티타늄 나사못 두 개를 박았다

두꺼운 거즈를 물려 말 할 수 없게 해놓고

의사와 간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최소한 한 달은 금연 금주해야 한다고

안다, 혹여 나사못이 턱뼈에 온전히 붙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오롯이 환자에게 떠넘기기 위해

단서를 달아두는 것이라는 것쯤

 

속이 메스껍고 이유 없이 배도 아프다

위암의 전초 증상이 소화불량이라는데....

별 궁상을 다 떨다가 홈닥터 인터넷에 물어보니

금단 증세란다

 

통풍을 다스리기 위해 발효 중인 개다래술이라도 한잔 할까

그러기엔 돈 대주는 아내가 너무 무섭다

 

그나저나 내 돈 주고 씌웠던 금의 소유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시집, 우리가 너무 가엾다, 삶창

 

 

 

 

 

 

노안 - 권혁소

 

 

안경을 쓰고서야 먼 데 칠판

글씨를 읽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이미 위로 벗어 올리고서야 한 줄

책이라도 읽는 세월이 있다

써야만 보이던 세상을

벗고서야 읽게 되었으니

안경을 탓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어디 안경뿐이겠는가

여기저기 낡은 뼈들의 아우성으로

뒤척이는 밤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풀 한 포기 딱정벌레 한 마리도

허투루 대할 일이 아니다

 

 

 

 

*시인의 말

 

일곱 번째 시집을 묶는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맹세를 전제로 묶지만, 번번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 느닷없는 사랑처럼 시가 왔기 때문이다. 시 아니고선 이 세상과의 불화를 가라앉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점점 무뎌지는 쟁기를 보며 갈등한다.

쟁기를 버려야 하나 밭을 버려야 하나..., 그런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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