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니의 소유권 - 권혁소
남의 살을 조금 더 암팡지게 씹기 위해
금으로 씌워 근근이 버텨오던 어금니를 빼고
티타늄 나사못 두 개를 박았다
두꺼운 거즈를 물려 말 할 수 없게 해놓고
의사와 간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최소한 한 달은 금연 금주해야 한다고
안다, 혹여 나사못이 턱뼈에 온전히 붙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오롯이 환자에게 떠넘기기 위해
단서를 달아두는 것이라는 것쯤
속이 메스껍고 이유 없이 배도 아프다
위암의 전초 증상이 소화불량이라는데....
별 궁상을 다 떨다가 홈닥터 인터넷에 물어보니
금단 증세란다
통풍을 다스리기 위해 발효 중인 개다래술이라도 한잔 할까
그러기엔 돈 대주는 아내가 너무 무섭다
그나저나 내 돈 주고 씌웠던 금의 소유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시집, 우리가 너무 가엾다, 삶창
노안 - 권혁소
안경을 쓰고서야 먼 데 칠판
글씨를 읽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이미 위로 벗어 올리고서야 한 줄
책이라도 읽는 세월이 있다
써야만 보이던 세상을
벗고서야 읽게 되었으니
안경을 탓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어디 안경뿐이겠는가
여기저기 낡은 뼈들의 아우성으로
뒤척이는 밤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풀 한 포기 딱정벌레 한 마리도
허투루 대할 일이 아니다
*시인의 말
일곱 번째 시집을 묶는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맹세를 전제로 묶지만, 번번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 느닷없는 사랑처럼 시가 왔기 때문이다. 시 아니고선 이 세상과의 불화를 가라앉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점점 무뎌지는 쟁기를 보며 갈등한다.
쟁기를 버려야 하나 밭을 버려야 하나..., 그런 날들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만히 맥박처럼 짚어보는 누군가 - 손택수 (0) | 2020.07.16 |
---|---|
검은 악보 - 박은영 (0) | 2020.07.16 |
바닥이라는 나이 - 박남희 (0) | 2020.07.15 |
기억의 맹점 - 이주언 (0) | 2020.07.09 |
무심함에 대하여 - 이서화 (0) | 2020.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