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온한 꿈 - 황원교

마루안 2020. 7. 8. 19:42

 

 

불온한 꿈 - 황원교

 

 

저 붉은 봉숭아 꽃잎 으깨어 열 손가락 물들이듯

내 생애 한 철만이라도 너를 그렇게 물들일 수 있다면

 

저 붉은 봉숭아 꽃잎 으깨어 열 발가락 물들이듯

내 생애 전부를 너와 그렇게 함께 살 수 있다면

 

아, 널 생각하면 입안에 절로 침이 고여

방금 잘 여문 사과 한 입 깨문 것 같고

수밀도(水蜜桃) 한 입 덥석 베어 문 것 같기고 하고

샛노란 밀감 한쪽 슬쩍 떼어먹은 것 같은

 

널 그리워하면서 생겨난 불온한 꿈들이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는 가을 오후

 

낮에는 해를, 밤이면 별을 헤는 해바라기처럼

오롯이 너를 위해 피어나는 꽃이라면

 

 

*시집/ 꿈꾸는 중심/ 도서출판 시가

 

 

 

 

 

 

가시 돋친 자의 일상 - 황원교

 

 

햇살 쏟아지는 아침마다

무수한 금빛 화살에 꽂힌 나는

한 마리의 황금 호저처럼

느릿느릿 생명의 대초원을 횡단한다

 

누구든지 건드리기만 하면 가만 안 놔두겠다는 듯이

제 딴엔 아주 거만한 자세를 취해 보지만

겁쟁이일수록 가시를 더 곧추세우는 법

 

그것도 잠시뿐

다르마*의 형벌 같은 햇볕을 피해 보려고 하지만

얼굴에 가시가 없어 슬픈 짐승이여

 

아니 몸피에 가시가 너무 많아서

함부로 누구에게도 가까이 갈 수 없는

불행으로 가득한 업보여

 

 

*불교의 삼보(三寶) 중의 하나인 법(法). 부처님이 가르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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