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김영옥 외

마루안 2020. 7. 3. 22:33

 

 

 

내용도 좋고 책 재질도 친환경적으로 소박하고 가격도 비교적 착한 책이다. 특히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독자를 물고기로 보고 제목으로 낚기 위한 함량 미달인 책이 많은 요즘인데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라니,, 언젠가부터 새벽 무렵 잠이 깨는 경우가 잦다. 나는 지독한 잠보였다. 누웠다 하면 업어 가도 모르고 아침 잠이 많아 천둥 소리처럼 요란한 알람 시계를 두 개씩 놓고 잤던 잠퉁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매일 잠자기 전에 알람 시계 하나는 책상 아래 깊은 곳에 감춰야 했다. 가까운 곳에 두면 잠결에 알람을 끄고 도로 자는 것을 방지하는 묘안이었다. 알람이 울리면 끄기 위해 의자를 꺼내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꺼야 겨우 잠을 깼다.

오십대가 되어 변한 게 있다면 노안이 온 것과 이른 아침에 알람 없이 잠을 깨는 것이다. 예전엔 깼더라도 금방 다시 잠이 들곤 했으나 요즘엔 한참 걸린다. 이럴 때 나이 들었음을 실감하면서 쓸쓸함이 밀려온다. 그래도 아직은 다시 잠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는 어른한테 들었다. 나이 먹으면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고 꼬박 날을 샌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서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잠들지 못해서 잠을 못 자는 거란다. 매일 새벽 잠에서 깨 뒤척이며 아침을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긴지 공포스럽다고 했다.

그나마 배우자라도 있으면 의지가 되련만 혼자 남은 노인이라면 외로움이 오죽할까. 거기다 질병까지 있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에 나이가 있냐고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는 건재함은 건강할 때 이야기다.

80살에 저 세상에서 데리러 와도 할 일이 너무 많아 못 간다는 당당함은 그저 유행가 이야기다. 가사에 공감하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늙음과 질병은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이 책은 새벽 세 시 무렵 깨어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밤중도 그렇다고 새벽이라 하기도 애매한 시간 새벽 세 시, 아픈 사람은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고 누군가는 쏟아지는 잠을 참으면서 돌봐야 한다. 그곳이 병원 특실일 수도 요양원일 수도 있다. 돌보는 사람이 가족일 수도 요양보호사일 수도 있다.

두 살 아이처럼 스스로 밥을 먹을 수도 용변도 다른 사람이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처지라면 어떤 심정일까. 몸을 맡긴 사람이나 돌보는 사람이나 고통스럽다. 거기에 치매까지 있다면,, 그래서 3년 병치레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이 책은 여러 명이 같이 쓴 공동작이다. 분야별로 관심 있는 저자들이 아픈 당사자들과 주변 가족들 이야기를 진지하게 기술하고 있다.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있냐고? 그러나 아프기 전이나 치매가 오기 전에 일찍 죽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