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아무도 달이 계속 자란다고 생각 안 하지 - 강민영 시집

마루안 2020. 6. 30. 22:35

 

 

 

강민영 시인은 2015년 늦깎이로 등단해서 이번에 첫 시집을 냈다. 군대간 아들을 향한 애틋함을 담은 그의 산문집을 읽으면 그가 중년을 넘은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일찍부터 글을 썼던 문장가임을 느낄 수 있는 중년의 첫 시집이 보석처럼 빛난다.

스마트 시대여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새것이 대접 받는 세상이지만 나는 늦깎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는 나이가 들어서 어떤 것을 시작하거나 뒤늦게 꿈을 이뤄 성공한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늦깎이의 본래 뜻은 <늦게 머리 깎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나이가 들어서 머리 깎고 중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어란 것이 생명과 같은 것이라 시대의 변화를 따라 이처럼 본래의 뜻이 변하기도 한다.

불교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파르스름하게 깎은 스님의 머리를 보면 서늘해진다. 종교인도 사람이지만 어쩌다 저 사람은 중이 되었을까. 무당처럼 저 스님도 운명처럼 어떤 내림을 받을 것일까. 평범하지 않는 길을 걷는 사람을 향한 애틋함이기도 하다.

엉뚱하게 늦깎이 시인 얘기를 하다 딴길로 흘렀다. 그만큼 이 시집에 공감 가는 시가 많아서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 시집에 앞서 시인의 산문집에 실린 약력은 이렇다. 20대에는 서양 미술을 공부했다.

그리고 결혼한 후 30대에는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아들을 낳고 키웠다. 40대에는 조형예술, 금속공예, 보석디자인을 공부하여 조형작가가 되었다. 개인전과 그룹전을 하는 중에 수필가가 되었다.

50대에는 문예창작학과에서 시와 소설을 공부하여 시인이 되었다. 지금은 서양 철학, 고전 문학에 집중, 소설과 시 창작을 하며 다음 책 출간을 위해 시간을 아껴 쓰고 있다. 이러니 늦깎이 스님의 파르스름한 머리가 떠오르지 않을 것인가.

일상의 경험에서 건진 쉬운 어휘로 감동을 준다. 특히 어머니를 향한 애절함이 절절하다. <그대로 죽게 해달라는 간절함과/ 어수선하게 쌓인 신발의 얼룩이/ 사방으로 흩어진 방>, <진달래 화전 부쳐주던 어머니/ 빈 마대 자루가 되었다>, <어머니 손등 저승꽃이/ 자목련 위에 피어난다> 등이다.

주기적으로 삶창에서 나오는 시집을 꼼꼼하게 살핀다. 어느 시집인들 소중하지 않으랴만 삶창의 시집 목록에서 떨림과 탄식이 교차한다. 술래잡기처럼 멈췄다 숨었다를 반복하다 고맙게도 이 시집을 만났다.

시인은 하필 삶창에서 시집을 냈을까. 교실에서 부잣집 아이가 돈을 잃었다고 난리다. 학교 밖에서 흘렸는지 교실에서 없어졌는지는 모른다. 담임은 가장 가난한 아이를 범인으로 지목해 이 사태를 간단히 수습한다. 구경만 했던 시인은 이것이 가슴에 얹혔다.

<침묵이 폭력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수십 번은 하늘이 얼고 녹았다 또, 꽃이 피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생겼지만 우리의 침묵은 외침으로 자라나지 않았다>. 이 시집 삶창에서 나올 만하다. 늦깎이는 아름답다. 시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