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흘러간다 - 김진

마루안 2020. 7. 1. 22:17

 

 

흘러간다 - 김진


오늘 만난 택시 기사는
내비게이션을 끄며 눈이 침침하다고 했다
한평생을 길 위에서 살았지만
세 명의 자식은 이국땅에 산다고
백발의 드라이버는
물때가 낀 페트병을 들어 목을 축였다
세월이 닦은 하얀 머리칼이 그의 머리에
가지런히 누워 길을 열고 있었다

저기는 아직 닿지 않은 곳
나는
푸른빛이 도는 마스크를 쓰고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걷고 있을 것이다
저만치 먼저 가는 택시 기사를 알아보면
어여쁜 물통 하나 쥐여주고 그의 벗이 되어
마음보다 먼저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걷고 있을 것이다

간간이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을 세다
차창 밖을 보니
페트병 뚜껑을 닫은 그가
아직은 때가 아니니
창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

뿌연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주름을 숨기고
황혼에 이르는 길을
흘러가고 있다


*시집/ 바다 고시원/ 책만드는집






눈물의 수평 - 김진


이제 겨우 중년이 되었다
소리 내서 흘렸던 눈물이
한쪽으로 기울어 무거웠다

날개 젖은 잠자리도 마를 날을 기다린다는데
나는 아직 완성이 없는 것이라
앞으로 흘릴 눈물이 아찔해서
고요 속으로 숨어들었다

훔쳐 새긴 통증이 스며들어
숨을 쉴 때 마다 어깨가 빠졌다
무게가 다른 울음을 발라 끼운 탓에
사방으로 덜렁거렸다

이제 겨우 중년
중년이라 할 수도 없는 중년인데
날 닮은 무엇 하나 쏟아놓지 못한
비어버린 몸인데
정의된 행복 속에서
외롭다 말하지 못했다

초년을 살아내면서
이제 겨우 중년까지 나온 눈물은
처음의 소리를 안고 나온 눈물과
수평을 맞추지 못했다





# 김진 시인은 1981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자랐다. 단국대와 동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07년 <경남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바다 고시원>이 첫 시집이다. 여성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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