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 - 김두안

마루안 2020. 6. 22. 21:50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 - 김두안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을 꽃이라고 부른다 
나는 꽃을 꺾어 해안에 던진다 

새들이 눈썹처럼 돌아와 차갑게 우는 것은 
아직도 불빛을 향해 
배 위를 달려가는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을 등대라고 부른다 
나는 불빛을 꺾어 바위에 던진다 

새들이 침묵을 물고 바위 속에 제 그림자를 접어 넣는다 말갛게 씻긴 발을 들이고 신열에 떨며 몸을 웅크린다 새들이 눈을 감고 바라보는 낡은 부리에는 어느 백랍 같은 영혼의 냄새가 묻어 있다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을 안식처라고 부른다 
나는 돌아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기로 한다 

어두운 심연에서 떠오른 안개가 바위를 삼키며 해안을 점령한다 
폭풍우 속으로 사라졌던 검은 배가 
뱀이 우는 소리를 내며 부두에 닿는다 
안개 속에서 폐허가 된 마을로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짙은 안개는 
새들의 바위를 다 어쨌을까 

안개 속에서 
죽은 사람의 이름이 밀려오는 
밤이면 새들은 꽃을 먹지 않는다 


*시집/ 물론의 세계/ 문학수첩 

 

 

 

 

 


환월(幻月) - 김두안 


나는 어떻게 달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거대한 강가에는 창문이 없는 빈집과 모래 위에 까마귀 화석이 서 있다  

나는 소란이 떠난 마을을 바라본다 밝지도 어둡지도 못한 불면의 경계에서 달의 멸망한 빛을 생각한다 

어느 날 까마귀의 예언처럼 사람들은 강가에서 희고 거룩한 고요의 종교가 발견됐다 부패한 구름은 지상으로 내려와 층층이 얼어 버렸으며 청동색 별이 무수히 지워졌다 사람들은 스스로 혓바닥을 삼키고 돌 틈에 작은 붓꽃을 심었다 그리고 모두 강을 건너가 빙하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도 침묵의 강가에는 
종단으로부터 이탈한 자를 쫓는 짐승처럼 검은 바위들이 서 있다 

지상의 종교가 죽음 이후 시간과  
빛의 탄생을 약속했듯   
빙하 속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반사된다 

나는 또 몇 번의 생을 거슬러와 이 거대한 멸망의 강가에서 빈집의 문을 연다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노란 붓꽃에서 눈물 냄새가 난다  

나는 그토록 바라보았던 달에 와서 환새의 기억을 꿈꾼다 

고요로부터 도망친 
눈동자에 
달의 환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 김두안 시인은 1965년 전남 신안 출생으로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달의 아가미>, <물론의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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