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쓸쓸한 말 - 김형로

마루안 2020. 6. 23. 22:29

 

 

쓸쓸한 말 - 김형로


멀리 있는 벗이 전화를 했다
어떻게 지내냐 안부를 묻고
무심한 세월 탓도 하고
그냥저냥 지나간 청춘의 일 그리워
니가 오든 내가 가든,
한번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듯
카톡 사진으로 근황을 훔치다가
니가 오든 내가 가든,
게으른 약속 생각나 내가 전화를 했다 

목단꽃 하나 들면 니가 거기 있었다고
그 말 전하고 싶었는데...

오가지 못한 그 사이
습관처럼 굳어진
쓸쓸한 말 

니가 오든, 내가 가든...
그 사이에
꽃이 말없이 졌다

 

*시집/ 미륵을 묻다/ 도서출판 신생


 

 

 


대꽃이 피면 - 김형로


칸마다 손님을 태우고 어느 별로 갔을까

누구는 꽃을 두고
백 년이다 육십 년이다 하고
길조다 흉조다 해도

분명한 것은
꽃은 피었고 열차는 떠났다는 것

하도나 그곳은 멀기도 해서
죽어도 못 닿을 먼 곳이기도 해서

만장 같은 꽃을 수렁수렁 달고
안드로메다나 은하수 너머 어디쯤

무사히 건너갔을까
평생을 기다리며 푸른 별 대꽃 하나 본 아이는



 

*시인의 말

 

작은 새들은 천적을 피해

가시덤불 속으로 몸을 숨긴다

멧새는 찔레 가시 속을 찾아 들어갔을 뿐인데

이렇게 적는 사람이 있다

찔레는 작은 가시 하나 들고 힘없는 것들 편에 섰다고

그런 시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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