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비 몸살 - 조성국

마루안 2020. 6. 21. 19:33

 

 

비 몸살 - 조성국


저걸 무어라고 해야 하나
유유히 지느러미 살랑거리는 버들치
연못 밖으로 냅다 튀어나와 땅바닥 쳐 대는 걸
무어라고 해야 하나
하늘 한쪽 검기울고 아등그러져 갑작비 품은 날에는
멱 붉고 등이 검푸른 새
기울기 삐딱한 마당 스치듯이
날랜 곡예비행을 하는 거나
무수히 제 몸을 쳐서 공중에 고정시키던 때까치
급강하해 낚아챈 버들치 급소를 탱자 가시에 꽂아 쪼는 걸
무어라고 해야 하나
그 뉘한테 배운 적 없어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거먹구름 속의 비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저걸 나는 다만
본래부터 타고난 천성으로 여기지만
그저 욱신욱신 쑤셔 대는 뼈마디를 다독거리며
다들 비 몸살 앓는다는 엄니의 단호한 말에는
아무런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시집/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 문학수첩

 

 

 

 

 

 

동정 여인숙 - 조성국


겉장이 나달나달해진
검정 숙박계에다
세상에도 없는 엉터리 주민등록번호
재재바르게 쓰고
갓 지어낸 가명도
날렵히 휘갈겨 긋던 사방연속 꽃무늬
눌눌하게 빛바랜 방
윗도리 속베개에 구겨진 강제징집 영장
쇠못 옷걸이에 걸며
쏴하게 떨리던
새하얀 요 홑청에 뻘겋게 번지는 물방울마냥
그런
그런 날은 또 없으리
통방해 오듯 베랑빡 탁탁 치며
씹할! 조용히 좀 합시다, 곤두세운
옆방 사내의 목청 같은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설적 유전자 - 정진혁  (0) 2020.06.22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 - 김두안  (0) 2020.06.22
불안한 인연 - 박미경  (0) 2020.06.21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 조항록  (0) 2020.06.19
하루의 감정 - 김정수  (0) 202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