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저녁이 오고 있다 - 우남정 시집

마루안 2020. 6. 16. 23:30

 

 

 

낯선 시집을 만나면 책 날개에 적힌 약력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본다. 이 시집이 그랬다. 긴 제목을 달고 나온 첫 시집이다. 두어 편 읽으면서 이 사람 적어도 오십은 넘었겠구나 했다. 중간쯤 읽다 예순 살은 넘어야 보이는 시라고 여겼다.

맞다. 우남정 시인은 환갑이 넘은 여성 시인이다. 시인 약력에서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지 모르나 그것 또한 독자와 공감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초 정보다. 시인의 본명은 우옥자, 이 시집을 내기 전 본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고 시집을 내기도 했다.

숨어 있는 시인에게 관심이 많은 탓에 뜻밖에 걸려 든 좋은 시집을 만나면 설렌다. 그냥 읽고 마는 시인이 아님을 직감하고 정보를 추가했다. 이 시집을 유심히 읽은 것도 시인의 본명에 유난히 정이 가고 시집 또한 공감 가는 시가 많아서다.

순탄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굴곡 많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따뜻함을 느낀다. 일상을 시 속에서 살고 싯구 하나를 위해 고치고 다듬고, 오랜 시 쓰기의 내공에서 우러나는 깊은 시심을 발견했다.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끓어 오르는 시를 가슴에 담고 오랜 시간 가슴앓이 했음도 느낀다. '오냐, 한번뿐인 삶 그냥 이대로 살다 갈 수는 없다'는 자기 인생에 대한 약간의 복수심 같은 것도 감지한다. 부조리한 삶이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문장의 복수다.

시인은 시집을 낼 때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밤을 새워 시를 다듬고, 고르고 골라 시집을 냈을 시인의 노고에 비하면 독자의 흰소리는 얼마나 가벼운가. 뒤늦게 발동한 시심에 박수를 보내며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눈여겨 볼 만한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