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장미 - 정덕재

마루안 2020. 6. 2. 18:59

 

 

장미 - 정덕재

 

 

장미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내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야

장미 가시 같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하는 사내는

가시에 찔려도 좋을 만큼

솔직하고 용기 있는 애인이야

봄에 핀 장미가 늦가을까지 가는 걸 본

한 정원사는

장미도 사군자의 덕목에 포함될 수 있는

절개의 꽃이라고 외쳤지

연애편지를 쓰면서

첫 줄에 장미 같은 여인에게 라고 쓰지 않고

당신을 보면

장미 가시가 생각난다고 쓰는 사내가 있을까

오월의 장미는

뜨거운 유월의 햇빛을 받고

칠월의 장맛비에

더 무성한 팔월의 장미로 피어나고

구월의 장미는

단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월의 장미는

십일월의 장미로 꽃잎을 연다

 

첫눈 올 때 피어 있는

장미는

겨울을 기다리는 꽃이고

가시는 겨울의 꽃이다

 

 

*시집,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걷는사람

 

 

 

 

 

 

시의 비만을 줄이는 식이요법 3

-매듭의 시간

 

 

운동화 끈이 자주 풀어진다

하루에 세 번이나 끈을 다시 맨 적이 있다

허리를 숙여

헐거워진 운동화를 조이는 일에

집중을 했다

뛰는 데 벗겨질까

빠르게 걷는 데 불편할까

끈을 단단히 묶는 데 신경을 기울였다

늘 추적자의 긴장감으로 살아왔다

늦으면 뛰었고

속도를 내지 못하는 걸음과

어깨동무를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신발 끈이 풀어지는 이유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끈이 풀어지면

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풀어진 매듭을 보면서

신발에 갇힌 발을 보았다

족저근막염을 앓는 내내

매듭의 시간을 알지 못했다

 

 

 

 

 

# 정덕재 시인은 1966년 태어나 부여에서 자랐고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배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남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시집으로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 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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