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도 늙겠지 - 한관식

마루안 2020. 6. 1. 22:04

 

 

나도 늙겠지 - 한관식


나도
한없이 늙겠지
느티나무 아래 겨울 한철 다리 부러진 평상처럼
세상 밖으로 밀려 나겠지
밀려 앉은 모습이 흉해지지 않도록
간신히 남은 다리로 버티고
밤새 다녀간 길짐승을 나지막이 얘기하겠지

나도
한없이 늙겠지
빨래가 없는 날은 하늘을 받치고
하늘이 없는 날은 자신의 고삐를 끌고
살점을 찾아 떠나는 바지랑대처럼
깡마른 세월을 살고 있겠지
억지를 부리며 무엇엔가 간혹 지독해지기도 하며


*시집/ 비껴가는 역에서/ 도서출판 미루나무


 

 

 

 

비껴가는 역에서 - 한관식


등받이 없는 의자에 서성이는 아침과 앉아
거울에 비친 시간을 쥐어든다
낯선 사람들의 표정으로 얼굴을 덧칠한
게으른 새벽
내가 선 자리에서 소유할 수 없는 눈높이를
툴툴 털어내고 출구를 향한다

몇 사람은 빠져나가고
몇 사람은 기다림으로 서성이고
낡은 출구는 저리 삐걱거리는데
이미 모습을 드러낸 기차는 선로에 둥지를 틀고 엎드렸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은 짐칸 속에서 버둥거리며
대합실 문을 여닫기도 전에 스스로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나이보다 무거운 어깨를 기차 안에 부려 놓는다

아직도 삶은 고단하게 덜컹거리고
여기였던가
흘러가는 기차를 붙잡고
비껴가는 역에서
때늦은 후회를 감싸 쥔다

 

 

 

 

# 한관식 시인은 경북 영천 출생으로 2007년 <시사문단>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비껴가는 역에서>, <밖은 솔깃한 오후더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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