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다와 잃다 사이 - 나호열
마땅히 있어야 하는 그곳에서 사라진 시계와 지갑 같은 것 청춘도 그리하여서 빈 자리에 남은 흠집과 얼룩에 서투른 덧칠은 잊어야 한다는 것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손에서 놓아버린 아쉬움이라고 하여도 새순으로 돋아오르는 잊어야지 그 말
문득 열일곱에서 스물두 살 그 사이의 내가 잃어버린 것인지 놓아버린 것인지 아슬했던 그 이름을 며칠째 떠올려보아도 가물거리는 것인데 왜 나는 쓸데없이 손때 묻은 눈물에 미안해하는가
낮달처럼 하염없이
*시집/ 안녕, 베이비 박스/ 시로여는세상
칼과 자(尺) - 나호열
-이순을 지나며
칼을 품고 살았네 남을 해칠 생각은 없었지만 잴 수도 없는 사람의 깊이를 질러보거나 쓸데없이 너비를 어림잡아 보기도 하였네 차고 이울어지는 것이 달의 이치인데 보름달만 달이라고 우기는 것이 어리석은 자 하나를 휘두르는 꼴이었네 칼이 송곳이 되는 세월을 살다 보니 너와 나의 간격을 가늠할 수 없는 자를 어디다 버릴까 궁리 중이네
*시인의 말
나에게 시는 세상으로 날아가는 파랑새였지만 결국은 때 묻고 허물만 남아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돌팔매였다. 순간순간 내게 달려들던 괴물의 정체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 詩와 人의 불화를 또 부끄럽게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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