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방 뺀 날 - 김형로

마루안 2020. 5. 28. 21:37

 

 

방 뺀 날 - 김형로


이천십팔 년 유월 이십 일
이층 방 뺀 날
문자를 보냈다
방은 생각보다 넓고 슬프도록 깊다고

답이 왔다
존재보다 부재가 더 큰 나이가 되었다고
고맙게 살자고, 고맙지 않은 게 어디 있더냐고

-뽑은 이는 돌려주세요 첫정이라 묻어주렵니다
안 됩니다! 의료폐기물의 반출은 불가합니다!

그렇구나,
내 육신도 지상의 방 뺄 때 그럴 것이므로
내 것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주신 이도 거두시는 이도 그 분이시므로


*시집/ 미륵을 묻다/ 신생

 

 

 

 

 

 

고맙지 - 김형로


아이구 내 눈 고맙지
이런 먼지도 볼 수 있는 내 눈 고마워
아이구 내 손도 고맙지 이런 것도 다 치울 수 있으니

나이 먹으면 다 그렇지
치매는 무슨 치매
아이구 이 정도로 기억하는 것도 고맙지
내 발도 고맙지
데려가고 데려오고

이 집도 고맙지, 누가 내 보고 돈을 주겠냐
자식 돈을 우째 받아 쓰겠냐
고맙지 고마워 매달 딱딱 돈을 부쳐주니

살아보니 모두 생광스런 고마움 천지더라
너도 달아난 머리카락 섭섭타 말고
남아 있는 거 고맙다 하거라
굽은 나무 선산 지키듯이
풍상 속 여태 남은 것이 얼매나 고맙냐

고마운 것은 외상이 없니라
언제나 지금 고마운 것이니라
지금 고마워하거라
지금 고맙다고 말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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