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 - 허형만
거을을 볼 때마다
늙은 낯선 사람 하나 만난다.
한 생의 자드락길이 이마에 고여 있고
얇아진 혀를 두려워하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낯선 늙은이 하나
나와는 다른 듯 다르지 않아 보이는 사람을
거울 속에서 만난다.
*시집/ 바람칼/ 현대시학사
흐리다 - 허형만
눈이 흐리다.
눈이 흐리니 하늘도 흐리다.
너무 맑은 것만 골라보고 살아온
죄, 참으로 미안하다.
흐린 것도 맑은 것인 양 그리 살아온
죄, 참으로 부끄럽다.
눈이 흐리다.
눈이 흐리니 마음도 침침하다.
이제 흐린 것도 흐린 것대로
침침한 것은 침침한대로
잔말 없이 고개 숙이고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날까지 죽어 살기로 하는 것이다.
# 허형만 시인은 1945년 전남 순천 출생으로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3년 <월간문학>에 시, 1978년 <아동문예>에 동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가벼운 빗방울>, <불타는 얼음>, <황홀> 등 다수가 있다. <바람칼>은 그의 열여덟 번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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