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대포리 고물 장수 - 심응식

마루안 2020. 5. 28. 22:04

 

 

대포리 고물 장수 - 심응식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래 그치고

아! 아!
고~물 삽니다!

채팅하던 마누라 집나가서 홧김에 집어던진 컴퓨터
돌리고 돌리다 기절한 세탁기
밤낮 신음하는 카세트라디오
막장연애 끝에 팔베개한 텔레비전
고~물 파세여~!

잠시 그쳤다가 다시

박아도 안 박히는 사진기
뱃심 좆심 다 쓰고 바람 잔 선풍기
헛물켜다 따기 맞은 청소기
뜨물에 담근 놈처럼 미지근한 에어컨
고물 파세여 고물~!

서울 대구 부산 찍고 스텝 엉킨 다이얼 전화기
부랄 떨어져 죽은 시계
곧 죽어도 별 세 개라고 개폼 잡는 냉장고

쏘니도 삼성도 망가지면 고물
고~물  삽니다!

봉고차 고물차
화물칸 녹슨 구멍으로 떨어지는 확성기 고~물 하는 소리
한나절 전봇대그림자로 지나가는 논틀길


*시집/ 조지 다이어의 머리에 대한 연구/ 생각과 표현

 

 

 

 

 

 

일장춘몽 - 심응식


북부간선도로 봉화산역근처 삼거리는
방음벽에 갇힌 마사이마라다

지금은 길짐승무리의 발정기

들이대고 밀어내며 서로의 몸 합치는 길
빨간 후미등에 달라붙어 헐떡거리다
후끈 달아올라 식식 대는 하얀색 천마*
끼어들까 눈 부릅뜬다

버들강아지 피던 달밤
입술이 쌉쌀하다며 콧등으로 웃던 그 계집애 같은
벚꽃 한 잎이 운전석 앞창에 피었다

가장자리 벌써 말라가는 꽃잎
첫 경험의 흔적 같은 저 분홍이
팔짱끼고 바라보듯 유리창에 달라붙어
위로의 한 말씀
일장춘몽

남기고 떠나간 봉화산역근처
아랫배 움츠리며 삼거리 깊숙하게 올라탄 차창에
그날 밤처럼 불쑥 다녀간 꽃잎
그래봤자, 이 울화를, 이 다급함을 어찌하겠는가

노란 방향등 깜빡이며 안달하는 검정색 지프
창문을 내리고 반짝 별 하나 뜨듯 흔드는 저 하얀 손
숲속 갈라진 삼거리에 바싹 끼워주고 싶어
일장춘몽
꾹, 브레이크를 밟았다.


*현대자동차 에쿠스(라틴어)의 우리말 뜻




# 심응식 시인은 인천 출생으로 2016년<월간문학> 수필 당선, 2017년 <월간문학>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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