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내 집에 갇힌 사회 - 김명수

마루안 2020. 5. 25. 21:19

 

 

 

한국 만큼 집 문제가 인생의 전부를 차지하는 나라가 있을까. 막장 드라마 욕하면서 보듯이 집 문제 정책 또한 정부를 욕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집값 오르기를 기대한다. 어쩌다 집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 축구 대표팀 경기가 열리면 온 국민이 TV 앞에서 축구 전문가가 된다. 실수한 선수를 향해 저 새끼 빼라 아우성이고 패스라도 실패하면 나는 저런 새끼 국가대표로 안 뽑는다고 감독이 된다.

주택 정책도 월드컵 때 축구 전문가 못지 않게 전문가가 많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불만, 집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불만이고 각자 할 말이 있다. 주택 보급률이 100% 넘겼으니 살기 위해서만 집을 소유한다면 주택 정책은 큰 문제가 없을 듯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가 책의 부제목으로 <생존과 투기 사이에서>라는 단어를 쓴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편 저자는 <한국인은 살기 위해 집을 사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집을 산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집에 억눌려 영혼을 갉아 먹는지 알 수 있는 문장이다.

주택 투기를 방지하는 여러 장치에도 불구하고 투기꾼들은 허점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마치 보이스 피싱 같은 금융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보안책을 마련해도 사기꾼들이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보이스 피싱 사기범들이 노숙자들에게 사들이는 대포통장처럼 예전에 청약자가 몰릴 때 0순위 청약통장을 가입 금액 몇 배의 웃돈을 주고 사는 일이 성행했다. 진정으로 그들이 입주해 살기 위해 사는 집들이었을까.

자동차로 신분 과시를 하듯 집도 하나의 계층 표시로 변했다. 그래서 장미 아파트, 개나리 아파트가 힐스 타운이나 무슨 칸타빌 등 이상한 외국어를 갖다 붙였다. 그래야 집값이 비싸고 지위가 보장된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문장이 공허하다.

이 책은 논문 형식에다 살을 붙인 것이라 읽기에는 다소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심층적인 연구로 인해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한국인이 주택 정책에 적응해 왔는지를 세세하게 알 수 있다.

저자는 집을 향한 생존주의가 금방 종식되지는 않을 거로 예상한다. 집값은 내려도 문제고 오르면 더 문제기 때문일 거다. 기성세대의 생존주의 전략은 소유 문턱에서 좌절하는 청년세대의 불만을 키우고 사회 재생산에서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진단한다.

출판사 창비가 문학 분야에 강세를 보이는데 이런 책까지 내는 걸 보면 대단하다. 이런 좋은 저자를 발견해 좋은 책을 만드는 것도 출판사의 역량이다. 신생 출판사의 분발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