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우리가 너무 가엾다 - 권혁소 시집

마루안 2020. 5. 15. 19:07

 

 

 

권혁소 시인은 35년의 시력에 비해 늦게 알았다. <아내의 수사법>을 읽고 시인을 알았고 <다리 위에서 개천을 내려다보다>를 찾아 읽었다. 기억해 놓았던 시인이었는데 새 시집이 나왔다. 일곱 번째 시집이란다.

삶창에서 나오는 시집은 가능한 읽으려고 한다. 전태일의 정신과 노동 친화적이라 일종의 빚진 기분으로 찾아 읽는 출판사다. 그렇다고 모든 시집을 다 읽을 수도 또 읽었다 해도 모든 시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시에 공감했다 해도 읽고 나서 후기를 쓰고 싶은 시집은 드물다.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다.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시를 억지로 읽는 것도 일종의 고문이다. 마음 가는 책 읽기도 모자란 시간에 자처해서 전두엽에 무리를 줄 필요가 있을까.

문학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온전히 내 것이 된다. 권혁소의 이번 시집이 그랬다. 억지로 쥐어 짠 시가 아니라 일상에서 체득한 시적 경험을 무리 없이 표현했다. 싯구를 따라 가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 먹고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

시인은 아는 것 만큼 쓰고 독자도 아는 것 만큼 읽어내면 된다. 시인이 피 토하듯 쓴 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시인은 특별히 꾸미거나 뱅뱅 돌리지 않는다. 문학적 수사도 무척 담백하다.

강원도 출신의 시인은 오랜 기간 학교에서 음악 선생을 했다. 국영수 선생보다야 대학 가는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겠으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알려준 선생이었지 싶다. 시에서 그것이 보인다.

시인은 시집을 낼 때마다 이번이 매번 마지막이라는 맹세를 전제로 묶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사랑처럼 시가 왔기 때문이고 시 아니고선 이 세상과의 불화를 가라앉힐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세상과의 불화는 시인의 숙명이다. 시집 맨 마지막 장에 실린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를 읽으면 시인은 계속 시를 쓸 것 같다. 써야만 한다. 절절하게 다가오는 그 마지막 구절을 옮긴다.

따뜻한 가슴으로 꼭 한 번
안아주고 싶었던 사랑하는 아이들아
껍데기뿐인 이 나라를 떠나는 아이들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눈물만이 우리들의 마지막 인사여서 참말 미안하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