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침내 바보들이 돌아왔다 - 이원규

마루안 2020. 5. 23. 21:32

 

 

마침내 바보들이 돌아왔다 - 이원규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시

 

 

한 사람이 떠났다 보내야 했다

한 사내가 떠났다 보내야만 했다

한 바보가 떠났다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른 아침까지 저승새 울더니

한 시대의 풍운아, 한반도의 고독한 승부사

잠시 눈길 피하는 사이 몸을 날렸다

절망과 환멸의 짙은 그늘 아래 쪼그려 앉아

잠시 고개를 숙이는 사이

역주행 한반도의 먹구름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이

한 사나이가 먼저 온몸을 날렸다

 

살아남은 우리 뒤통수에 벼락을 내리치며

저 홀로 훌쩍 뛰어내리고야 말았으니

부엉이바위는 절명의 성지

이 시대의 처음인 생사일여 순교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떠나고

또 하나의 바보가 돌아오고 있다

비운의 풍운아, 고독한 승부사가 떠나고

마침내 수백 수천만 명의 바보들이 돌아오고 있다

 

 

*시집/ 달빛을 깨물다/ 천년의시작

 

 

 

 

 

 

청별항 - 이원규

 

 

막막하다는 말은 한사코

내 몸 바깥으로만 내달리고

먹먹함은 내 안쪽으로 스며든다

 

보길도 청별항의 이별은 맑고 푸르러

살갑게 뒹굴던 몽돌 여인이여

너무 일찍 피어난 동백꽃이여

 

너의 섬은 먹먹하고

나의 섬은 여전히 막막하고

 

누군가는 아늑하고 아린 것이라 했다

누군가는 아득하고 아픈 것이라 했다

 

 

*시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 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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