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세상에서 울음이 가장 슬픈 새 - 이봉환

마루안 2020. 5. 20. 21:38

 

 

세상에서 울음이 가장 슬픈 새 - 이봉환

 

 

한참을, 뒷산이 내 뒤에 배경처럼 앉아 있었고

또 한참을, 멧비둘기 한 마리 날아와 곁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서 나른한 봄 여기까지 내려왔니?

왜 자꾸 동구 밖을 기웃거려?

구국구욱 구국국 구욱국

내가 묻고 그가 답하는데

 

밤새 끙끙 앓던 처가 오늘 새벽 숨을 놓아버렸어

앞산 사는 장모님이 연락받고 오신다기에, 흑흑

 

아내가 죽었어? 저런, 저런, 애들은 몇이나 되고?

 

아들 둘에 딸 하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내가 그랬어

자기 죽거들랑 새끼들은 꼭 장모님한테 맡겨달라고

그래야 안 굶기고 옷 제대로 입혀 키울 수 있다고

짠한 새끼들 시골 할머니한테 떠맡기는 건 싫지만

뱁새 집에 알 낳고 몰래 도망쳐버린 뒷산 뻐꾸기보다는 낫다고

 

그래, 그래, 힘내서 잘 살아라 홀아비 멧비둘기야

장모님이 데려가더라도 애들 보러 앞산엘랑 자주 가고

세상에서 가장 울음이 슬픈 새야 구국국구욱국 꾸욱꾹

아내 묻힌 낙옆 무덤으로 허둥지둥 날아가는 새야

 

 

*시집/ 응강/ 반걸음

 

 

 

 

 

 

사생결단 - 이봉환


요양원에 입소한 엄마는 곱게 쥔 두 손을 휠체어용 식판에 얌전하게 올려놓았다 고향과 멀어져버린 당신 얼굴은 내가 누군지 몰라서 시무룩하다 따뜻한 밥이 한 그릇 앞에 놓이자 금방 환해진 자귀나무가 꽃잎을 꼬무락꼬무락 펼쳐낸다 어? 숟가락을 움켜쥐는 꽃잎 끝마디가 기역 자로 구부러져 있다 영락없는 낫 한 자루가 관절과는 상관 없는 쪽으로 굽어서 무언가를 자르려고 잔뜩 벼르고 있는 것 같다 논밭의 일들을 마치지 못한 흔적,

굳어버린 화석을 안쓰러운 눈길이 자꾸 쓰다듬자 오랜 기억이 한 점 꾸물꾸물 드러난다 자귀나무 꽃 속에서 구국국꾸욱꾹 섧던 멧비둘기 울음 몇 소절도 함께 발굴된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마른 밭 땅을 꽉 붙들던 육쪽마늘들 뽑으려던 손가락을 입과 함께 여간 앙다물어야 했으리 놈들을 그러쥐고 죽기 살기로 견뎌야 했을 것 일생이 내내 사생결단이었으리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쥔 놈들 중 하나가 바로 우리였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