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몰래 버린 신앙 - 김광섭

마루안 2020. 5. 19. 19:28

 

 

몰래 버린 신앙 - 김광섭


양파를 벗길 때
핏줄은 선명해져

봐,
음침한 뿌리
불투명한 일가

돌이킬 수 있단다
돌이켜야지

핏줄은 끊는 것

붉은 망 속의 해골을 확인해도 잊히지 않는
분열된 뚜렷한 혈통

아버지,
몰래 버린 신앙

너는 나를 업신여기는구나
날 잃은 상주여


*시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 파란출판

 

 




파문 - 김광섭


자유롭고 울창한 그늘을 향해
모든 열매가 상상하는 한 그루 생명이 자란다
빛과 어둠이 서로 깨물며
하나의 목덜미가 되는
삽입의 물결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원받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은 인간은 계속 깨어나겠지만
당분간 믿음은
눈부시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내가 나를
부끄럽다 하는가
알몸처럼 떠오르는 물음
고독한 둘레
나의 사려 깊은 불신은 온순하다

양들은 길을 잃고 태도를 얻는다
인간의 체위로 신의 체위를 바꾸는
상상은 성스럽다

누가 나를
불손하다 하는가
공손하지 못한 질문들
누가 믿음을 업신여기는가

명예를 생각해
존엄과 품위는 유일하니까
순수를 지켜야 한다면
순결을 잃겠어

신도는 혈통을 지켰으니
담대하라

추락하는 낙원의 빛이여

동정을 잃으면
영혼은 새로운 불신을 갖게 될 것이다

침착한 세계의 끝

질문하는
짐승의 네발과 인간의 두 발

토끼가 귀에서 벗어나듯
태초가 변하고 있다

믿음을 탕진한 세대에게 감사를

자지러지는 둥근 민낯을 위해
자유롭고 울창한 그늘을 향해
모두가 빛인 것처럼
모든 열매가 상상하는 한 그루 뱀이 자란다

인간은
반문하기 위해 영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