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눈물의 씨앗 - 황형철

마루안 2020. 5. 18. 23:07

 

 

눈물의 씨앗 - 황형철


앉으려면 힘없이 쓰러지고 빙글빙글 원을 그렸다 그래 지구는 둥그니까 어떤 축이 있어 하루 한 번씩 회전하는 거라고 배웠으니까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고 늦게나마 깨달았으니까

어지럽다는 것은 눈물이 많다는 증거
태생적으로 둥글기만 하여 구를 수밖에 없는 성질이어서 자꾸만 원심력이 몸 안을 도는 것이어서 일종의 소용돌이고 자전이고 순리다

도처에 우왕자왕, 눈물이 범람할 징조다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것은 어지럼증 덜어 몸을 일으키고 어둔 구름의 한쪽을 걷어 사막에서 잃은 별자리를 되돌려주는 것일 텐데

잘못 받아든 점괘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것도 실은 눈물이 구르는 힘
눈물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의 숙명


*시집/ 사이도 좋게 딱/ 걷는사람

 

 

 

 

 

바위무덤 - 황형철


하루하루가 늘 궁지이거나 얼얼한 서리 속이네 차가운 부엉이바위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천 리나 가야 하는 멀고 먼 여정 앞에 모든 게 묘원하네 상처는 아물지 않고 눈물이 밀려들수록 우리 손을 맞잡던 온기 잊을 수 없네 그 순간만큼은 어떤 결여도 없이 따뜻했네 오늘 당신의 가쁜 걸음들이 별로 떠서 반짝이네 말간 얼굴도 떠오르네 언제인가 모든 게 닳고 닳아 사라질 것이니 함께 한 세대를 살았다는 진실밖에 남지 않을 것인데 심약한 나는 천 리는 가지 못하고 홀로 서향나무 꽃향기 맡으며 우네 고인돌처럼 깊은 잠에 든 바위무덤 앞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도리가 없네





# 황형철 시인은 1975년 전북 진안 출생으로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과 계간 <시평>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람의 겨를>, <사이도 좋게 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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