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도 한때는 요즘 애들이었다 - 권혁소

마루안 2020. 5. 21. 18:59

 

 

나도 한때는 요즘 애들이었다 - 권혁소

 

 

권 선생, 잊지 말게

그대도 한때 교복 단추 한두 개쯤 풀어놓고

검은 운동화 꺾어 신던 요즘 애들이었네

 

교납금 미납으로 학교에서 쫓겨나

울 엄마가 가난하지 내가 가난해, 씨발

까닭 모를 질문 세상에 게워내던

빡빡머리였다는 사실, 잊지 말게

 

그대도 한때는 무서운 요즘 애들이었네

잊지 말게, 요즘 애들이 커서 끝내는

광장이 된다는 사실

나라가 된다는 진실

 

 

*시집/ 우리가 너무 가엾다/ 삶창

 

 

 

 

 

 

중학교 선생 - 권혁소

 

 

백창우의 동요 '내 자지'를

너무 무겁게 가르쳤다고

학부모들에게 고발당했다

 

늙어서까지 젖을 빠는 건 사내들이 유일하다고

떠도는 진실을 우습게 희롱했다가

여교사들에게 고발당했다

 

아파트 계단에서 담배 피고 오줌 쌌다는 주민 신고 받고

홧김에 장구채 휘둘렀다가

애한테 고발당했다

 

자지는 성기로 고쳐 부르겠다

젖 같은 얘긴 하지 않겠지만 만약 하게 될 일이 있다면

사람이나 포유동물에게서 분비되는,

새끼의 먹이가 되는 뿌연 빛깔의 액체로 고쳐 말하겠다

그리고 애들 문제는 경찰에 직접 맡기겠다

 

잘 있어라 나는 간다

수목한계선에 있는 학교여

 

 

 

 

 

# 권혁소 시인은 1962년 강원도 평창 진부 출생으로 1984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논개가 살아온다면>, <수업시대>, <반성문>, <다리 위에서 개천을 내려다보다>, <과업>, <아내의 수사법>, <우리가 너무 가엾다>가 있다. 3회 강원문화예술상을 받았다. 내설악 인제에서 학습 노동자들과 노래를 나누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