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측백나무 그 별 - 정병근

마루안 2020. 5. 18. 21:06

 

 

측백나무 그 별 - 정병근

 

 

비 온 다음 날 측백나무 갈피에

한 무더기 별이 내려앉았다

삼천대천을 날아

겨우 불행의 연대에 도착한 것들

 

여기는 기억의 피가 도는 땅

이별의 체온이 상속되는 곳

쉽게 입이 삐뚤어지고 뼈가 뒤틀리는 건

허기를 후비는 바람 때문

눈은 한쪽으로만 기울지

 

생각하지 마라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면

굽은 다리와 꼬부라진 등으로

측백측백측백을 하늘의 별만큼 외어야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측백나무

어린 머릿내가 코를 찌른다

울타리 밑에 분분한 덩굴장미 꽃잎

 

꽃이 피고 지는 별에 살았다고 구전하리라

물의 비가 내리는 지붕 밑에서

밥이라는 밥을 먹었다고 들려주겠다

일생이 온통 너였던

측백나무 그 별

 

 

*시집, 눈과 도끼, 천년의시작

 

 

 

 

 

 

향하여 - 정병근

 

 

내 몸과 말이 어디론가 향하는 것은

그곳에 네가 있기 때문이다

 

향함은 꽃과 같이 아름답지만

그곳에 가는 일은 위태롭고

너에게 닿으면 죄가 된다

 

향하지 않았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말은 그저 혀에 머물렀을 것

고스란히 죄를 받는 것은

너를 향한 때문인 것

 

너에게 갔고 말을 보냈다

내 몸과 말은 편향의 앞을 가졌다

 

소리와 빛의 다발 속에서

두 손을 입에 모아 누군가를 부르는 모양으로

한 오라기 시간의 벌거숭이를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면서 가고 갈 뿐

 

너를 향한 나를 거둘 수 없다

내가 죽은 후라 해도

또 다른 내가 너를 향할 것이다

 

 

 

 

*시인의 말

 

한 빛나는 다발 속에

내가 찾아진다면 좋겠습니다

 

별 뜻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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