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비 - 고재종

마루안 2020. 5. 16. 22:15



나비 - 고재종



피자마자 지기에는 충분히 준비된 일이기에


꽃빛 꽃빛 도화꽃빛
저토록 애절한가


먼 데서 나비는 날아와도 이내 꽃은 꿈속일 뿐


자취도 없이 날아간 데를 우두망찰할 양이면


나는 여기 있거나
왜 나는 여기 없는가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 문학들








고요를 시청하다 - 고재종



초록으로 쓸어 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는
새암가에 뭉실뭉실 수국송이로 부푼다


날아갈 것 같은 감나무를 누르고 앉은 동박새가
딱 한 번 울어서 넓히는 고요의 면적,
감잎들은 유정무정을 죄다 토설하고 있다


작년에 담가둔 송순주 한 잔에 생각나는 건
이런 정오, 멸치국수를 말아 소반에 내놓던
어머니의 소박한 고요를
윤기 나게 닦은 마루에 꼿꼿이 앉아 들던
아버지의 묵묵한 고요,


초록의 군림이 점점 더해지는
마당, 담장의 덩굴장미가 내쏘는 향기는
고요의 심장을 붉은 진동으로 물들인다


사랑은 갔어도 가락은 남아, 그 몇 절을 안주 삼고
삼베올만치나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
고금(孤衾)의 시골집 마루,


아무것도 새어 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고요가
초록바람에 반짝반짝 누설해 놓은 오월의
날 비린내 나서 더 은밀한 연주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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