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 이승주

마루안 2020. 5. 11. 22:29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 이승주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낮에는 앞산 보면 되고

날 저물어 산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엔

그 사람 생각

 

생애 단 한 번의 순간을 호명하지 못하고

꽃을 지난 다디단 단내의 그리움으로

맞이해야 할 밤들

 

그 사람으로 인해 고쳐질

그 사람으로 인해 깊어진 병

 

그 사람을 떠올렸다 함께 떠오른 생각

그 사람을 잊었다 함께 잊어버린 생각

지금, 그 시간을 다 찾을 순 없어도

 

열일곱 여학생보다

마흔이 더 아름다운 그 사람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시집, 물의 식도, 천년의시작

 

 

 

 

 

 

슬픔에 대하여 좀 아는 그 - 이승주


슬픔에 대하여 좀 아는 사람들은
기쁨에 대하여 좀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눈우물이 더 깊다

슬픔에 대하여 좀 아는 그는
나는 슬픔에 대하여 좀 안다고 말하진 않지만
슬픔이란 게
제 가슴을 후벼 판 우물 속에 고이는 눈물이라서
그의 커다란 눈우물 속엔 언제나
울음이 떠 있다

그는 오래오래 우물을 떠나지 않는다
기별 없이 가끔씩 기쁨이 찾아와서
그의 눈우물을 들여다볼 때 있지만
어차피 곧 떠날 손님

슬픔에 곁을 대고 사는 그는
오는 기쁨을 막지 않지만
가는 기쁨 붙잡지 않는다
다만, 넘칠 때마다 한번씩
눈우물을 칠 뿐이다

 

 

 

 

# 이승주 시인은 1961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위대한 표본책>, <내가 세우는 나라>,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 등이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 형성 - 백무산  (0) 2020.05.15
철학적 홍등가 - 신정민  (0) 2020.05.12
윤슬에 출렁이다 - 박경희  (0) 2020.05.11
거리에서의 단상 - 백성민  (0) 2020.05.10
정선 가는 길 - 이우근  (0) 202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