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뒤에 만날 사람 - 이승주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낮에는 앞산 보면 되고
날 저물어 산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엔
그 사람 생각
생애 단 한 번의 순간을 호명하지 못하고
꽃을 지난 다디단 단내의 그리움으로
맞이해야 할 밤들
그 사람으로 인해 고쳐질
그 사람으로 인해 깊어진 병
그 사람을 떠올렸다 함께 떠오른 생각
그 사람을 잊었다 함께 잊어버린 생각
지금, 그 시간을 다 찾을 순 없어도
열일곱 여학생보다
마흔이 더 아름다운 그 사람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시집, 물의 식도, 천년의시작
슬픔에 대하여 좀 아는 그 - 이승주
슬픔에 대하여 좀 아는 사람들은
기쁨에 대하여 좀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눈우물이 더 깊다
슬픔에 대하여 좀 아는 그는
나는 슬픔에 대하여 좀 안다고 말하진 않지만
슬픔이란 게
제 가슴을 후벼 판 우물 속에 고이는 눈물이라서
그의 커다란 눈우물 속엔 언제나
울음이 떠 있다
그는 오래오래 우물을 떠나지 않는다
기별 없이 가끔씩 기쁨이 찾아와서
그의 눈우물을 들여다볼 때 있지만
어차피 곧 떠날 손님
슬픔에 곁을 대고 사는 그는
오는 기쁨을 막지 않지만
가는 기쁨 붙잡지 않는다
다만, 넘칠 때마다 한번씩
눈우물을 칠 뿐이다
# 이승주 시인은 1961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위대한 표본책>, <내가 세우는 나라>,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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