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거리에서의 단상 - 백성민

마루안 2020. 5. 10. 21:21

 

 

거리에서의 단상 - 백성민

 

 

절룩거리며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반 무릎씩 접히는 어깨의 무너짐으로

골목길을 돌아 멈춘 자리

재활용 봉투의 깔끔함 옆으로 빈 소주병 두 개가 나뒹군다.

 

고운 여인의 목선 같은 병목안의 온도는 몇 도일까?

뜨거움이 빠져나간 자리

아무리 토악질을 해도 게워낼 없는 어지럼증이

허기를 일으켜 세운다.

 

생목을 앓듯 넘어가는 하루

은밀함을 감춘 불빛들이 촉각을 세우고

영역 밖으로 밀려난 발걸음은 저문 길을 따라 걷는다.

 

무릎마다 채워지는 바람 소리

얼마나 더 걸어야

나는 한 칸 반 어둠을 등에 질 수 있는가.

 

 

*시집/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인 것처럼/ 문학의전당

 

 

 

 

 

 

이 지상 어디쯤 - 백성민

 

 

하늘빛 그리움 먼저 풀어내고

햇살 한 줌에 올올이 영근 빛을 담아내는

웃음 좋은 사람 하나 있어

 

세상의 빛과 어둠이 왔던 길로 돌아가는

그 어느 날

즐겨 나누던 흔한 맹세 한번 없이

허기진 웃음마저도 곱게 받아준 사람에게

해실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잡아

웃음 한번 짓습니다

 

세상의 가슴 하나씩 태우고 나면

뭇별들 가로 걸리고

닿고픈 바람 하나로 노둣돌을 놓아

그대에게 가는 길

 

자로초 한 송이 이슬을 담아

저 혼자 울먹입니다